펜스 "北, 자국민 고문 '감옥 국가'...비핵화조치 취해야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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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겨울 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미국의 요구는 (북한과의)어떤 새로운 대화나 협상도 시작부터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핵·미사일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부인 캐런 여사가 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려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부인 캐런 여사가 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려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이날 오후 개회식 참석차 평창으로 출발하기 전 오산 공군 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런(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취한) 다음에야 비로소 국제사회가 협상과 현 대북 제재 체제에 있어 변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처럼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제재 완화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비핵화 조치가 우선이라는 기준선을 명확하게 그은 것이다. “북한과 조건없는 대화도 할 수 있다”(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고 했던 기존 입장보다 강경해졌다.

펜스 부통령은 아시아 순방 중에도 매일 여러 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화로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 발언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펜스 부통령은 전날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도발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모처럼 마련된 평화의 분위기를 의미있는 북·미 대화로 연결시키려는 한국의 입장과는 온도 차가 있다.

실제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공개 접견에서 펜스 부통령은 한국의 대북 접근법에 우려를 표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P통신은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다소 회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걱정했다”며 “그(펜스)의 참모들조차 펜스 부통령의 태도가 평소답지 않게 강경하다고 인정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해 탈북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해 탈북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평창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펜스 부통령은 이날 오전 평택 2함대 사령부를 찾아 지성호씨 등 탈북자 4명을 만났다. 북한에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고 탈북한 지성호씨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 교서 발표 때 하원 본회의장에 초청받기도 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탈북 작가 이현서씨도 함께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방남 등 북한의 매력 총공세(charm offensive)에 미국은 북한 체제의 치명적 약점인 북한 인권 문제로 반격한 셈이다.

펜스 부통령은 “오늘밤 세계는 북한의 ‘매력 공세’를 목격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잔인한 독재정권은 감옥 국가(prison state)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실체를 알려주는 여러분의 증언을 전세계가 들을 수 있도록 내가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과 이들의 삶이 증언하듯, 북한 정부가 자국 국민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만들고 있다”며 “지금도 수십만명이 강제 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다”고도 했다.

이 자리에는 북한에 억류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도 동석했다. 지성호씨는 프레드와 끌어안으며 아픔을 나눴고, 보고 있던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펜스 부통령은 이들과 만난 뒤 실외로 이동해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이 난 천안함을 살펴봤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9일 평택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9일 평택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그는 사령부 안에 있는 서해 수호관을 방문해 해군 전력과 NLL 상황 등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서해 수호관은 1·2차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등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을 기록하고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안보 전시 시설이다.
펜스 부통령의 이날 행보는 북한 정권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목적이었다. 유엔 인권조사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인권 유린이 국가 기관이 관여한 가운데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북한은 그간 “인권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해왔다. 천안함 폭침 도발로 장병 46명이 희생당한 데 대해서도 북한은 지금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을 들춰내 매력 공세 분위기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외교부 공동취재단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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