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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칼로레아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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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한국과 프랑스의 고등학생이 중간고사 수학문제를 바꿔서 풀면 어떻게 될까. 두 나라 학생 모두 ‘폭망’이다. 세계적 수학자인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2015년 진행한 실험 결과다. 한국 시험은 50분에 20문제를 푸는 선다형, 프랑스 시험은 두 시간에 5문제를 푸는 서술형이었다. 풀이 과정을 쓰지 못해 쩔쩔맨 한국 학생들 성적이 나쁜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프랑스 학생들도 67점 만점에 평균 15점으로 저조했다. 문제의 의미와 풀이 과정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프랑스 학생들의 특성 밑바닥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맞춘 교육이 있다. 정답 빨리 맞히기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방점을 둔다. 바칼로레아의 상징인 철학시험이 그런 교육의 정점이다.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인가’ ‘개인의 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의 반영일 뿐인가’와 같은 문제를 풀어내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때인 1808년 만들어졌다. 올해로 딱 210년 된 셈이다. 가위 ‘전통’의 반열이다. 그러다 보니 매년 철학 문제가 공개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단체들은 토론회를 벌이고 장삼이사들은 카페에서 서로의 생각을 논한다. 시험 관리에만 1조원 넘게 들어가는데도 국민의 79%가 바칼로레아를 없애면 안 된다고 하는 까닭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칼로레아를 200년 넘게 지속시킨 힘의 원천이다.

이런 바칼로레아가 변신의 기로에 섰다.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대입제도 개편안이 마련돼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바칼로레아 부문별 구분이 없어지고 응시 과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현 대학교육과 급변하는 세계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학생단체·교사노조 집회가 잇따르는 등 찬반이 분분하다. 프랑스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대입제도 뜯어고치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우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대지 못해 안달이다. 현 정부만 해도 그렇다. 집권하자마자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닥쳐 속도조절 중이다. ‘학종’ 공정성 운운하며 학생부 간소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교육만큼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도 없다. “교육정책은 과거 문제의 해결책인 동시에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관건은 ‘사회적 합의’다. 200년은 고사하고 20년이라도 지속될 제도를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