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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백년 만에 여성의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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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에이브러햄 링컨,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윈스턴 처칠…. 민주주의 신전(神殿) 중 하나인 영국 런던의 의회광장에 동상으로 선 인물들이다. 10여 명 모두 남성이다. 올해 처음으로 여성도 자리한다. 바로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밀리센트 포셋이다. 6일(현지시간)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맨체스터를 찾았다. 또 다른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팽크허스트 모녀의 활동 무대다.

100년 전인 1918년 2월 6일 여성 참정권 법안이 통과된 걸 기념하는 일정들이다.

민주주의 대명사 격인 영국에서도 1830년대까진 ‘가진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다. 7명 중 한 명꼴이었다. 몇 차례 개혁 끝에 19세기 말 그 비율이 40%로 올랐다. 여성에겐 그러나 여전히 닫힌 문이었다. 가정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선단체, 그 안에서도 비서직 정도였다.

그걸 깨겠다고 나선 게 팽크허스트와 포셋이다. 각각 강온(强穩)파를 상징한다. 포셋은 1897년 ‘여성참정권협회 전국동맹’을 꾸렸다. 주로 중간계급 여성들로, 참정권(suffrage)을 주장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서프러지스트(suffragist)로 불렸다. 공청회를 열고 의원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센 남성들’을 우군화했다.

1903년 팽크허스트 모녀가 꾸린 ‘여성사회정치동맹’은 노동자계급도 동원했고 폭력과 단식도 불사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로 불렸다. 어머니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부유층과 개별 정치인을 비난하며 “(이들이) 우리의 삶보다 자신들의 재물을 더 귀중하게 여기니 재물을 부수는 것으로 대화를 시도하자”고 했다. 1906년부터 8년간 1300여 명의 서프러제트가 투옥됐고 한 명의 ‘순교자’도 나왔다.

2015년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서프러제트가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엔 의견이 분분했다. 『옥스퍼드영국사』는 “목적에 기여했는지 혹은 방해했는지 말하기가 어렵다. 극적으로 목적을 표명했지만 폭력을 지지함으로써 잠재적 지지자들마저 멀어지게 했다”고 썼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었느냐고. 결과만 보면 최대 기여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8)일 수도 있다. 총력전으로 인한 파괴, 군대 간 남성의 자리를 채운 여성들의 헌신적 기여, 전후 사회통합 노력 등 말이다.

미투(#MeToo)의 시대다. 남녀는 물론 남남, ‘여여(女女)’ 사이에도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방법론은 다양하더라도 지향점은 같을 게다. 소수자라고 하여 차별받지 않는 사회 말이다. 여전히 갈 길 멀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