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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책 안 읽는 좀비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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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한국인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 5일 발표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종이책도 읽지 않았다. 1994년 첫 조사 당시 독서율(86.8%)은 물론 불과 2년 전보다도 5.4%포인트 떨어진 역대 최저치(59.9%)다. 혹자는 이젠 사람들이 종이책 대신 전자책으로 독서하거나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정보의 양과 질을 떠나 ‘종이책’ 독서만이 줄 수 있는 효용이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공감 능력이다. 토론토대 인지심리학 키스 오틀리 석좌교수는 독서를 ‘소통의 기적’으로 정의한다. 독서를 통해 타인의 의견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법, 즉 공감 능력을 배운다는 얘기다.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요크대 연구팀이 수백 명의 실험자를 대상으로 MRI를 촬영해 봤더니 글을 읽을 때 활성화하는 뇌 영역이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데 관여하는 뇌 영역보다 훨씬 더 컸다. 독서가 실제 인간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것만큼이나 크게 사람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셈이다.

다만 같은 내용이라도 종이책이 아닌 전자기기로 접하면 우리 뇌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다트머스칼리지 연구팀은 2016년 ‘텍스트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읽었을 때 해석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읽은 사람은 글에서 추론을 끌어내거나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단순히 정보만 취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공감 능력이나 사고력 같은 독서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려면 종이책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세상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점점 종이책은 덜 보고 스마트폰으로 단편적 정보만 더 많이 취한다.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는 부족해지고 과잉정보에 허덕이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댓글부대 같은 살아 있는 좀비의 등장이다.

인격장애 치료 전문가인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 조작의 비밀』에서 누군가를 정보과잉 상태에 있게 하면 주체성을 잃은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다며 그게 바로 요즘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라고 착각할 때 배타주의로 내달리고 독선적인 과잉반응이 일어나기 쉬워진다고도 했다.

어째, 딱 요즘 우리 얘기 같아 오싹하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