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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얼마나 다르면 다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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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생일 주인공을 둘러싸고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앞뒤 가사가 동일한 두 구절이다. 가락도 거의 같다. 그러나 약간 다르다. 음악이 상승했다는 느낌이 있고 앞의 것은 질문, 뒤의 것은 대답으로 짝을 이룬다. 이것이 같음과 다름의 균형, 즉 대조이다. 음악분석에서는 이것을 a:a‘로 표시한다. 다음에 오는 세 번째 구절은 “사랑하는 ○○○”인데 가사도 새로울 뿐만 아니라 가락도 변화가 많다. 뛰어오르나 싶더니 꺾여서 내려온다. b라고 표시할 수 있다. 이 하강의 느낌이 마지막 “생일 축하합니다”에서 계승되면서 노래가 완결된다. b’다. 분석가는 앞의 두 구절을 합해서 A라고 표시하고 뒤의 두 구절을 합해서 B라고 표시한다. a:a‘가 작은 대조를 보여준다면 A:B는 큰 대조를 보여준다.

음악이 대조에 의하여 구성되고 다름을 먹으며 크듯 #우리나라를 키워온 힘은 격렬한 목소리들의 충돌이다

이 노래는 여기서 끝나지만 필요하다면 더 큰 곡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새로운 가사와 새로운 가락이 필요해진다. 더 큰 다름으로 더 큰 대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악은 다름의 원심력으로 규모를 키우고 같음의 구심력으로 곡을 하나로 묶는다. 제1주제와 제2주제, 1악장과 2악장, 주제와 변주 모두 다 이 원리를 보여준다. 음악은 대조에 의하여 구성되고 다름을 먹으며 큰다.

음악의 구조를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묻는다. “‘밥’에 대조되는 말에 어떤 것이 있나요?” 대번에 “국” “반찬”하는 답이 나온다. 맞다. 주식과 부식의 대조다. “쌀”이라는 대답도 나온다. 좀 더 그럴듯하다. 조리가 됐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대조다. 내가 “좀 더 상상을 펼쳐봐요. 밥상 너머로.” 하자 “우유”라는 대답도 나온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 많이 말하는 대조이겠다. “빵”이라는 대답도 있다. 양식이냐 한식이냐를 가르는 대조다.

내가 계속해서 다른 것을 요구해도 학생들은 아무것이나 말하지 않는다. 강의실 안에는 시계도 창문도 칠판도 있고 자기 앞에 책도 노트도 연필도 있지만 그것들은 ‘대조가 되는 다른 것’이 아니다. 관계없는 별개다. 밥과의 연결축이 없으므로. 누군가가 “밥과 책, 육체의 양식과 정신의 양식”이라고 대답할 수 있기 전까지는.

성서에는 예수가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기 직전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악마는 유혹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시오.” 예수는 대답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여기서 빵은 음식의 대명사이니 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밥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말의 대조 속에 담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 장면을 주제로 ‘대심문관’이라는 심오한 장을 썼다. 여기서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빵(밥)이 가지는 절체절명의 중요성과 신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자유의 문제를 놓고 장대한 얘기를 펼친다. ‘밥과 자유’의 대조다.

대한민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격렬하게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 나라다. TV에서는 여야가 서로 물어뜯고, 광장의 이곳 저곳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마이크로 확성되어 귀를 찢는다. 지겨운 바도 있지만 실은 그러면서 발전해 왔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의 10위권 국가로. 저 격렬한 목소리들의 충돌은 우리나라를 키워온 힘이다.

여당이 밥이라면 국이나 죽 정도의 야당만을 상대해서는 그 펼침이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진영 내의 소꿉장난에 머문달까? 크게 뜻을 펼치려면 멀리 벗어나려는 야당을 끝끝내 붙잡아 자신의 상대로 삼아야 한다. 한편 야당은 여당의 밥과 연결되지 않는 것을 말해서는 헛소리가 된다. 관계가 끊어진 두 말은 아무런 담론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아, 우리는 북한과 어떤 대조의 축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대조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