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 명예졸업장 받게 된 사연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2년 6월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도들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도들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인 정진석(87) 추기경이 오는 26일 열리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서울대 명예 졸업장’을 받을 예정이다. 정 추기경은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정 추기경, 서울대 명예졸업장 받을 예정 #최창락 전 한은 총재, 작고 직전 추천사 #“힘없고 약한 자를 가슴으로 끌어 안은 사람”

서울대 관계자는 “올 초부터 본부가 정 추기경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7일 학사운영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인데,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수여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3일 말했다. 서울대는 입학 후 졸업하지 못한 사람 중 국가와 국민을 위해 크게 공헌했거나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도록 하고 있다.

2006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 축하를 받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옆에 서 있다. [중앙포토]

2006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 축하를 받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옆에 서 있다. [중앙포토]

정 추기경은 전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자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2006년 역대 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이 된 천주교 원로다. 정 추기경은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마치지 않고 1954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입학해 1961년 졸업했다. 원래 발명가가 되고 싶어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1970년 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 주교가 됐을 때 그의 어머니와 찍은 사진. [중앙포토]

1970년 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 주교가 됐을 때 그의 어머니와 찍은 사진. [중앙포토]

정 추기경이 서울대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된 데는 평소 친분이 깊던 고(故) 최창락 전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대에 보낸 추천사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정치학과 9회 졸업생으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경제기획원 차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최 전 총재는 정 추기경에 대한 추천사를 적은 직후인 지난해 12월 말 작고했다.

고(故) 최창락 전 한국은행 총재

고(故) 최창락 전 한국은행 총재

최 전 총재는 서울대에 보낸 추천사에 “내게는 어릴 적부터 두터운 정을 나눠 온 절친한 벗(정 추기경)이 있다. 추기경은 사제로서 언제나 약한 자의 편에서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운다.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은 온통 ‘무연고 행려병자들’의 유골로 가득하다”며 “그의 정신과 삶이 우리나라 젊은이들, 특히 모교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모교가 추구해야 할 인재 육성 방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추기경을 자랑스러운 나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명예 졸업자로 추천한다”고 적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고(故) 최창락 전 한국은행 총재가 남긴 추천사

초겨울 어느 저녁에 노(老) 졸업생이 사랑하는 나의 모교 서울대학교에 몇 글자 적어 올립니다.

제게는 어릴 적부터 두터운 정을 나눠 온 절친한 벗이 있습니다. 이 벗은 매우 학구적이며 사려 깊고 고결한 인품을 지녔습니다. 독일어로 된 철학 서적을 교과서로 사용하던 시대에, 그는 책에 쓰인 철학 사상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수업 시간 중 질문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쉬는 시간에 선생님에게 달려가 철학적 문제를 질문하곤 했죠. 그러고 나서는 선생님을 괴롭힌 것은 아닌가 하며 하루 종일 걱정하던 벗이었습니다.

이 벗과 저는 중학교 6년 내내 어울려 지내며 ‘나라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며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발명가가 꿈이었던 이 벗은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진학하여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잔혹한 민족의 비극적 역사가 나라와 국민에게 헌신하겠다던 그를 전 세계와 전 인류를 구원하는 신앙의 삶으로 이끕니다. 발명가로서 이웃과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일 못지않게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일에 몸을 바치기로 한 것이죠.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지 않고 신학대학에 진학하여 고귀한 성직자의 길을 걷습니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선 ‘나의’ 벗은 늘 우리 곁에서 위로와 희망과 밝은 빛을 주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벗이 됩니다.

저는 오늘 저의 자랑스러운 벗인 전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신 정진석 추기경을 서울대학교 명예졸업자로 추천하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계의 위대한 지도자가 자랑스러운 모교의 동문임을 알리려는 데 그치지 않고, 풍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미력하나마 평생을 바쳐 온 구순을 앞둔 한 노(老) 졸업생의 나라와 모교에 대한 애정에 따른 것입니다.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배출되고, 학문 간에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면서 그 성과들이 우리의 이웃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져야만 합니다. 특정 분야에 사회의 인재가 집중되고 나아가 이 인재들이 사회 문제를 외면한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소통과 융합과 통합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였고 개인적 편안함 보다는 사회와 이웃을 위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추기경은 어린 시절 개인적인 입신과 양명의 길이 아닌 나라와 국민에 보탬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힘들고 어려운 발명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눈으로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의 세계에 살았던 그는, 전쟁 중에 인간의 발명품이 인간을 해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이성을 넘어선 신의 섭리를 추구하는 신앙의 세계에 들어섭니다. 성직자로서 그는 예수님 닮기를 소망하면서도 인간의 현실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하는 교회법 분야의 1인자가 됩니다. 오감으로 지각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을 탐구하여 발명가를 꿈꾸던 소년은 열린 눈으로 인간 구원인 하느님의 원리를 깨치고 신앙인의 현실적인 삶을 규정하는 논리적 규범을 만듭니다.

과학적 관측 결과에 따라 초경험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는 추기경의 저서는 신앙과 과학과 법학을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사고와 다양한 가치 체계를 넘나드는 그의 포용적 사고를 보여줍니다.

추기경은 사제로서 언제나 약한 자의 편에서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웁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관에 자신을 기념하는 기념품을 단 하나도 들여 놓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은 온통 ‘무연고 행려병자들’의 유골로 가득합니다. 그는 힘없고 약한 자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느님의 소명인 이웃 사랑을 실천합니다.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정진석 추기경의 정신과 삶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특히 모교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모교가 추구해야 할 인재 육성 방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추기경을 자랑스러운 나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명예졸업자로 추천합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명예졸업 학위수여를 계기로 그가 평생 추구했던 이상이 널리 알려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 나아가 서울대학교 전체 학생들이 보다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 소통하며 포용력 있는 사고로 정의롭게 세상을 살아간다면, 제가 평생 꿈꿔왔던 온 국민이 다 함께 풍요롭고 행복하게 잘 사는 정의로운 나라가 곧 도래하리라는 믿음 속에서 힘들고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펜을 들어 서울대학교에 이 글을 올립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9회 졸업생 전 한국은행 총재 최창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