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도 범죄수익이면 몰수 대상" 암호화폐 첫 몰수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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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파일 형태의 암호화폐도 범죄수익이라면 몰수 대상이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해 몰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지법 형사항소8부는 30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안모(33)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또 원심의 몰수 및 추징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안씨에 대해 191비트코인 몰수와 6억958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대한민국 법원.[중앙포토]

대한민국 법원.[중앙포토]

안씨는 2013년 12월부터 3년에 걸쳐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122만명에게 음란물 23만5000여 건을 유포하거나 게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안씨는 당시 음란 게시물을 보려는 유료 회원들에게 상품권이나 비트코인으로 결제해 포인트를 적립하게 한 뒤 회원들이 영상을 다운로드 할 때마다 포인트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했다.

수원지법, 음란 사이트 운영자에 비트코인 몰수 판결 #216비트코인 중 범죄수익 인정된 191비트코인 대상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도록 하는 등 범죄수익 인정" #검찰 "몰수 안된 비트코인도 추징보전 청구 예정"

검찰과 경찰은 안씨가 이런 수법으로 벌어들인 수입만 216비트코인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검찰은 재판 당시 안씨와 안씨 가족, 여자친구 등의 계좌에 있던 현금 14억6000만원을 추징하고, 216비트코인을 몰수하겠다고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수원지법 반정모 판사)는 14억원 현금 가운데 3억4000만원만 추징할 것을 판결했고 비트코인 몰수 구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씨는 당시 "모든 이익이 범죄로 얻은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안 씨의 재산이 전부 범죄 수익이라고 볼 수 없는 데다 객관적 기준 가치를 산정할 수 없는 216비트코인 중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만 특정하기 어렵다. 비트코인은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 형태로 돼 있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결했다. 이에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한 지난 1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앞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한 지난 1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앞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암호화폐를 범죄수익 자산으로 봤다. 재판부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현금 외에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재산과 사회 통념상 경제적 가치를 지닌 대상을 모두 포함한다"며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거래소를 통해 환전이 가능하고, 가맹점을 통해 재화나 용역을 살 수 있어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8조(범죄수익 등의 몰수)는 범죄수익이나 범죄수익에서 유래한 재산 등을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또 "피고인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현재 수사기관이 생성한 전자지갑에 이체되어 보관하는 방법으로 압수돼 있고, 그 이체기록이 블록체인을 통해 공시돼 있으므로 압수된 비트코인을 몰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압수된 비트코인을 몰수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음란 사이트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방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이 범죄로 얻은 수익임이 확인되기만 하면 범죄수익은닉법에 따라 몰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216비트코인 중 191비트코인만 몰수하도록 했다. 안씨가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광고비로 받은 비트코인만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운영하던)성인 사이트 서버에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서버와 금액이 기록돼 있어 이를 사이트 운영 수익으로 볼 수 있다. 사이트 운영 이익으로 얻은 191비트코인에 대해선 몰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이날 재판부가 몰수 판결을 내린 191비트코인의 시세는 현재 24억2000여 만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이지만 이미 해외에선 암호화폐를 범죄수익 자산으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미국 뉴욕주 지방법원은 2014년 현재는 없어진 암시장 실크로드(Silk Road) 조사에서 압수한 비트코인을 몰수해 경매로 처분했다. 영국·스웨덴 등에서도 범죄수익으로 비트코인이 환수되고 있다고 한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법원이 비트코인에 대해 몰수가 아닌 추징(범죄로 얻은 물건 등을 사용해 몰수할 수 없게 된 경우 그 물건에 상당한 액수를 국가에 징수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비트코인 가격 급등으로 범죄수익의 일부만 징수가 가능해 범죄수익 환수 제도의 입법 목적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라며 "상고심에서도 몰수 판결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추징금 확보를 위해 일부 몰수되지 않은 비트코인에 대해 추징보전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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