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성 참사 뒤 요양병원만 스프링클러 … 사고 나야 땜질 정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26일 손경철 효성의료재단 세종병원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음주에 (스프링클러) 설치 공사가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이 언급한 데는 세종병원이 아니라 세종요양병원이었다.

4년 전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슈화 #일반병원은 관심 밖, 대책서 빠져 #밀양 터지자 “중소병원도 의무화” #1~4층 일반병원, 5층은 요양병원 #‘한 지붕 두 병원’ 허용도 논란 소지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에서 2015년부터 신규 요양병원에 한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존 요양병원은 올 6월까지 설치하도록 유예했다. 손 이사장은 이 규정을 언급한 것이다.

이번에 세종병원 화재가 나자 요양병원에만 스프링클러 규정이 있고 세종병원 같은 일반병원은 왜 빠져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의료정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조차 이런 반응을 보였다. 중소병원을 둘러싼 허술한 규정이 이번 화재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정부는 2014년 5월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로 노인 22명이 사망하면서 요양병원에만 규정을 강화했다. ▶스프링클러 의무화 ▶방염 처리된 커튼·벽지·카펫 설치 ▶불이 나면 소방서에 자동으로 알려 주는 설비 설치 ▶비상시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장치 등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반병원보다 강한 소방 안전 규정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때는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 대책을 마련하느라 요양병원 외 다른 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요양병원이 이슈였고 어느 누구도 일반병원의 화재 예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소방방재청은 새 규정을 의료법에, 복지부는 소방관련법에 넣자고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복지부 뜻대로 됐다.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소방시설법은 건물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면적과 크기를 기준으로 소방 안전 요건을 정한다. 의료기관이라고 해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2014년 장성 화재가 워낙 충격이 커서 요양병원만 예외로 규정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일반병원의 안전 기준이 요양병원보다 낮게 설정된 걸 이해할 수 없다”며 “요양병원 기준마저도 허술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일반병원과 요양병원의 소방 안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새로 문을 여는 병원은 강화된 규정을 적용하되 기존 병원에 일부 비용을 보조해서라도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체 결박 기준도 허술하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요양병원 환자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신체를 묶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응급 상황에서 쉽게 풀 수 있고 즉시 자를 수 있는 방법으로 묶도록 돼 있다. 이번에 세종병원은 요양병원이 아닌데도 18명을 침대에 묶었다. 박재현 밀양소방서 구조대장은 “태권도복 끈·띠 등을 사용했고, 이걸 푸는 데 최소한 30초에서 1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병원은 2015년 4월 5층을 통째로 요양병원으로 전환했다. 1~4층은 일반병원, 5층은 요양병원인 ‘한 지붕 두 병원’이 됐다. 밀양시 보건소가 전환을 허용했다. 복지부 확장 기준(유권해석)에는 불가피한 경우 확장을 허용하되 성인 남자 걸음으로 5분 거리를 넘지 않고 같은 병원으로 오인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세종병원 5층(601호) 입원 환자들은 요양병원인 줄 몰랐고 세종병원의 병동으로 알았다는 게 환자와 가족들의 증언이다. 정은영 복지부 과장은 “세종병원 의사나 간호사가 1~4층과 5층을 오가며 구분 없이 진료하지 않았는지 따져 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 스프링클러 의무화 검토=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박능후 복지부 장관)는 29일 브리핑에서 중소병원 등 다중이용시설의 자동소화설비(스프링클러 등)와 화재신고설비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건축물 면적을 기준으로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했는데 이제는 건물 이용자의 특성별로 소방 기준을 따로 정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며 “면적 단위의 기준에서 좀 더 세분된 내용으로 바뀔 게 확실하다. 기존 건물에 의무를 부과할 때 정부가 지원을 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2~3월 29만 개의 시설물 안전을 점검하고 ▶2022년까지 소방특별조사 대상을 두 배로 늘리며 ▶2월 중 간호인력 확보 방안을 공개하기로 했다.

박 본부장은 신체 결박과 관련, “일반병원에는 결박 규정이 따로 없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해 묶기도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반병원 기준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