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켈리 비서실장 불화', 제2의 배넌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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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7일 존 켈리 비서실장(당시 국토안보부 장관)과 코네티컷 뉴런던의 미 해안경비대 사관학교 행사에 참석해 국가가 연주되자 경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7일 존 켈리 비서실장(당시 국토안보부 장관)과 코네티컷 뉴런던의 미 해안경비대 사관학교 행사에 참석해 국가가 연주되자 경례하고 있다.

트럼프 취임 1년을 앞두고 다시 백악관 내부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군기반장' 존 켈리 비서실장 간의 불화가 불거졌다.

"트럼프 이민 정책, 진화하고 있다" 발언에 트럼프 격노 #"내 장벽 건설 약속 변하지도 진화하지도 않았다" 반박 트윗 #일단 불화 봉합했지만 쫒겨난 배넌의 길 따를 것이란 전망도

켈리 실장이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두고 '처음보다 진화(개선)됐다(evolved)','인지하지 못했다(not informed)'란 표현을 쓴 데 대해 트럼프가 격노하면서다. 미 언론은 "켈리 실장이 (트럼프와 틀어져 쫓겨난)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의 발단은 17일(현지시간) 오후 켈리 실장과 의회 내 히스패닉 코커스 소속 의원들과의 간담에서 비롯됐다.

켈리 장관은 신년 예산안을 논의하면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비용을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켈리 실장은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주장했던 이민정책은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놓았던 것이며 이후 (온건하게) 진화돼 왔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국경 전체에 걸쳐 장벽을 건설하지 않을 것이다. 또 멕시코가 그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자리에 있던 민주당 루이스 구티에레즈 의원이 WP에 전한 것이다.

존 켈리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

존 켈리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

실제 켈리는 이날 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원래 대선기간에는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 모르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캠페인(선거운동)과 실제 통치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무엇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영역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정책은 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접한 트럼프는 격노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에 가까운 지인을 인용, "트럼프는 이날 밤 자신과 친분이 깊은 인사들에 전화를 돌려 켈리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했다"며 "그는 켈리의 발언이 대통령직의 귄위를 떨어뜨린 것으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분노는 18일 아침이 되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새벽 6시16분 두차례에 걸쳐 트위터를 올렸다.
 "장벽은 장벽이다. 그건 내가 구상한 첫날부터 절대 변하지도, 다른 형태로 진화하지도 않는다", "멕시코는 기가 막히게도 710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200억 달러를 들여 장벽을 설치하는 건 쥐꼬리만한 돈(peanuts)이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해 9월 19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지난해 9월 19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P=연합뉴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켈리 실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진화' 등 그의 발언에 격노해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의회전문 매체인 '더 힐'은 "트럼프는 켈리가 자신을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벼운 존재로 만든 걸 참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켈리가 마치 '노련한 전문가'로서 미숙한 지식을 지닌 자신을 훈육해 장벽 정책의 진전을 이끌어 낸 것처럼 묘사된 것에 트럼프는 폭발했다"며 "특히 '진화'라는 표현이 지구 상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트럼프에겐 모욕적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4월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취임한 폴 매너포트가 공화당 전국위원회 모임에서 '트럼프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 뒤 트럼프 눈밖에 난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이나 생각에 대해 남이 뭐라고 평가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시오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켈리 비서실장은 트럼프의 무지함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조정자'란 이미지를 부각했다는 점에서 마침내 (쫓겨난)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최측근으로 있다 지난해 8월 축출되고 최근 '화염과 분노' 책 발간을 계기로 트럼프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배넌과 같은 길을 가게 됐다고 분석한 것이다.

해병대 사령관 시절의 존 켈리 비서실장

해병대 사령관 시절의 존 켈리 비서실장

 켈리는 18일 오전 트럼프에 전화통화와 면담 등을 통해 자신의 발언이 왜곡돼 전달됐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펜실베이니아 출장에 나선 트럼프는 켈리 실장에 대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켈리는 일을 잘하고 있다. 그는 매우 특별한(special) 친구"라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실은 "트럼프는 켈리 실장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발언을 (왜곡해) 전한 언론에 화가 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단 봉합은 됐지만 '제2의 배넌 사태'가 곧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백악관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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