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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대사관 피신' 어산지, 에콰도르 시민 됐다…나올 길은 막막

중앙일보

입력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셔츠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6년 가까이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말 에콰도르 시민권을 땄다.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셔츠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6년 가까이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말 에콰도르 시민권을 땄다.

 6년 가까이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피신해 있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46)가 에콰도르 시민권을 땄다. 하지만 그에게 외교관 지위를 부여해 달라는 에콰도르 측의 요청을 영국 정부가 거부해 갇혀 있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웨덴 체포 피해 2012년 6월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행 #어산지의 귀화 신청 에콰도르 정부가 받아들여 #영국 정부는 외교관 지위 인정 요청 거부 #미 대선 때 클린턴 곤경 빠뜨려 에콰도르도 골치 #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수도 키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주 출신 어산지의 귀화 신청이 지난해 12월 12일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지난해 9월 에콰도르에 귀화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어산지는 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로 2011년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막으려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성폭행 혐의를 부인한 그는 이듬해 6월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6년 가까이 생활해 오고 있다.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

 스웨덴 당국은 지난해 5월 어산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수배도 철회했다. 하지만 영국 경찰은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나오면 체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에스피노사 장관은 “한 사람이 평생 이런 환경에서 살 수는 없다"며 “어산지가 시민권을 딴 이후 영국 정부에 그에게 외교관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외교관 지위를 확보하면 어산지가 일부 면책 특권을 부여받아 체포되지 않고 대사관을 빠져나와 영국을 떠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에콰도르 정부의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대해 더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산지 문제의 해결책은 그가 대사관 밖으로 나와 사법처리 절차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에콰도르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6년 설립된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201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복무하던 첼시 매닝 전 육군 일병이 건넨 전쟁 관련 비디오와 미군 기밀문서 등을 폭로해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미군의 아파치 헬리콥터가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영상도 담겨 있었다.

 어산지는 체포될 경우 미국에서 극비 문건 유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어산지는 영국 정부가 자신을 체포해 미국으로 추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사진 트위터]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사진 트위터]

시민권을 부여하긴 했지만 에콰도르에도 어산지는 부담이 되고 있다.

어산지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골드만삭스 고액 강연 원고,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e메일을 공개하며 클린턴 진영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자료는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것이라고 미국 관리들은 밝혔으나, 어산지는 자료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에콰도르 정부는 어산지의 트위터 접속을 한 때 차단했다. 더욱이 카탈루냐 독립 논란과 관련해 어산지가 에콰도르의 동맹국인 스페인 정부를 비난하자 에콰도르 지도부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관측이다.

 어산지의 대변인인 그레그 반스는 “어산지는 5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접촉하지 못한 채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며 “어산지와 에콰도르 모두에게 더는 참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콰도르의 첫번째 중재 노력이 영국 정부의 거부로 무산돼 어산지가 대사관을 빠져나올 기약은 없는 상태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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