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 … ‘1만원 공약’부터 내려놓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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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초부터 ‘최저임금 실험’의 역풍이 예상보다 깊고 광범위하다. 집권 진영에선 “최저임금 7530원을 감당하지 못할 한계기업이라면 진작에 문을 닫았어야 했다”고 우기지만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상권마다 골목마다 벌집을 쑤셔놓은 듯 최저임금 부담에 따른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후폭풍이다.

공약 지키려다 실업난 부채질 #생활 물가 전방위로 들썩거려 #인상 속도 조절해야 혼란 줄여

무엇보다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고용주들이 자구책으로 감원이나 무인화·자동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휴식시간을 늘려 임금을 동결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도 어려운 경우 자신의 근로시간을 늘려 대응하는 고용주들도 적지 않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여파로 최저임금의 보호가 가장 필요한 계층부터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 대부분이 아르바이트·파트타임 등 저임금 시간제 직종이다. 주로 청소·경비·주차관리 등 취약계층이 맡아 온 일자리들이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날벼락을 맞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이다. 이들은 직접고용에서 용역업체로 대체되면서 오는 31일 전원 해고된다고 한다. 무인경비시스템이 도입되는 아파트뿐 아니라 외식업체·주유소·편의점·독서실·카페에도 무인화 점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소득 정체에 허덕이는 국민들 앞엔 물가 상승 쓰나미도 몰려오고 있다. 최저임금이 급상승하자 햄버거 값이 5~6% 뛰더니 부대찌개와 설렁탕 같은 대중음식도 인상 도미노에 합류했다. 미용실·세차비·사진값 등 서민들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생활물가도 줄인상되고 있다. 고가 수입제품도 인건비가 오른다는 이유로 덩달아 값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래서는 최저임금을 올려받고 설령 일자리를 지켜도 더 비싼 음식과 물건 값을 내면 무슨 소용인가.

정부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 지난 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서울 종로 음식문화거리를 방문했을 때 한 상인이 “물가 좀 잡아주면 좋겠다”고 호소하자 김 부총리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1.7%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몸부림을 외면하고 책상 위에서 나온 수치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 내 엇박자가 나오는 게 이상할 게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납품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유통 분야 표준계약서를 개정했지만, 기획재정부는 물가 인상 단속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다음달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세제 혜택 같은 땜질 처방이라면 접어야 한다. 우선 최저임금 1만원 공약부터 포기해야 한다. 현실에 맞게 지역별·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전면 손질하고 상여금·숙식비 등 산입 범위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은 대증요법이 아닌 전면적 수술이 불가피하다. 오죽하면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조차 “1만원 공약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