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15년간 가둬 죽게 한 日 부모…33세 딸 체중은 19㎏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친부모에게 15년 이상 감금돼 있다 사망한 33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연이 알려지며 일본 열도가 들썩거리고 있다.

오사카 30대 여성, 골방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 #부모 "정신병 난동 막기 위해 가둬 둔 것" #방 잠그고 식사는 하루 한 끼, 체중은 19kg #이웃들 "딸과 함께 사는 지 몰랐다"

지난 해 말 딸의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체포됐다 불구속으로 풀려난 부모가 지난 2일 보호책임자 유기치사 및 감금 혐의로 다시 경찰에 체포되면서 사건의 진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 방송 FNN이 공개한 사망자의 초등학교 시절 모습. [방송화면 캡처]

일본 방송 FNN이 공개한 사망자의 초등학교 시절 모습. [방송화면 캡처]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망한 여성은 오사카부 네야가와시에 살던 33세의 가키모토 아이리(柿元愛里)씨.

지난 해 12월 23일 아버지인 가키모토 야스타카(55·회사원)와 어머니 가키모토 유카리(53)가 “딸이 죽은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리씨의 사인은 ‘동사(凍死)’였다. 사망 당시 아이리씨의 키는 145cm, 몸무게는 19kg으로 몸에 지방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극도의 영양 실조로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사망자는 가설 주택의 방 한쪽에 칸막이를 설치해 만든 다다미 2장(약 1평) 규모의 골방에서 나체로 이불을 몸에 덮은 채 누워있었다. 이 방은 바깥에 잠금 장치가 돼 있고, 안에는 간이 침대와 수세식 변기가 놓여 있었다. 골방 밖에 설치한 탱크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만든 급수 호스가 있고, 방 한쪽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부부는 딸의 모습을 안방에 놓인 모니터로 보며 스피커 등을 이용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가키모토 부부는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난폭한 행동을 막기 위해 방에 가두어 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딸에게 하루에 한 끼밖에 주지 않았으며, 방에는 난방 기능이 없는 에어컨만 달려 있었다.

방송에서 재현한 아이리씨가 감금돼 있던 방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방송에서 재현한 아이리씨가 감금돼 있던 방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부부는 아이리씨와 여동생을 데리고 1995년 이 집으로 이사 왔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리씨는 6학년 즈음 정신 질환 진단을 받았고, 이후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부부는 진술했다. 이들은 2002년께부터 딸을 골방에 가두고 최소한의 음식만 주면서 카메라로 딸의 행동을 감시했다.

이상한 점은 사망자의 방 안 뿐 아니라 집 바깥에도 10여 대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던 것. 이들은 이 카메라로 집 주변의 상황을 살피면서 딸의 존재를 주변에 철저히 감춰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웃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에 인기척이 없어 빈집으로 생각했다”거나 “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부모의 주장대로 사망자가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아사히 신문은 아이리씨의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들을 만나 취재한 뒤 “당시 그녀는 책을 좋아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곤 했다” “수줍음이 많은 보통의 여자아이였다” 등의 증언을 전하기도 했다. 후지TV 등에서는 “말이 없고 어두운 아이였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는 초등학교 동창들의 말을 보도했다.

“늘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과 다리에 10개 이상의 멍이 있었다” 등의 증언도 나와 용의자들이 딸을 어릴 적부터 학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다.
부모는 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에 상담 신청을 한 적이 없고 장애인 수첩이 발행된 기록도 없다. 이에 따라 정신 질환에 대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이리씨와 부모가 함께 살던 집 [방송화면 캡처]

아이리씨와 부모가 함께 살던 집 [방송화면 캡처]

부부는 지난 달 18일 딸의 사망을 알았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둘째 딸이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경찰에 알려야 한다”고 강하게 권유해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의 핵심은 부부가 딸을 죽음에 이르도록 일부러 방치했는지 여부다. 용의자들은 “감금이 아니라 요양을 위한 격리였다. 딸이 쇠약해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루에 한 끼만 준 것에 대해서도 “지난 해 1월부터 하루 두 끼에서 하루 한 끼로 식사를 줄였다. 우리의 판단에 의해 딸에게 적절한 양의 음식을 준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한 사망자의 위에 음식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사망 며칠 전부터의 녹화 영상을 확인한 결과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볼 때 이들이 딸의 쇠약함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