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강제개봉’에 판사들 반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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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명수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의 이른바 ‘판사 뒷조사 문건(블랙리스트)’ 조사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일선 부장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라 제기됐다. 법관들의 PC를 강제로 열어 형법상 비밀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일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 소속 판사 7명을 고발한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중앙일보 1월 3일자 12면>

법원 블랙리스트 재조사 후폭풍 #“영장주의 형사법 대원칙 위반 #당사자 동의 없이 조사도 위법 #대법원장 책임 자유로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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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51·사법연수원 28기)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2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법관이 다른 법관의 컴퓨터를 강제로라도 꼭 열어볼 필요가 있었을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법 원칙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다뤄야 할 법원이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반된다는 의심과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혹 제기자가 추가조사위의 주체가 된 것과 관련해 “무언가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눈으로 사안을 본다면 같은 사안도 의혹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추가조사위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단순한 인사카드나 메모를 블랙리스트라고 확대 해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조사의 대상과 방법을 한정한다고 해서 조사대상자의 프라이버시가 완전히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15일 서경환(52·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부장판사급인 이숙연(50·26기) 부산고법 판사는 “당사자 동의 없는 컴퓨터 강제 조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판사는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파일의 작성·관리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하기 위해선 해당 파일에 기재된 법관들에 대한 불이익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만 불이익 조치의 존재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소명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의 기본 요건이라 할 수 있는 ‘피해자’가 없다는 의미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 4명이 현직 판사들의 정치 성향을 분류해 부당하게 인사에 반영하려 했다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해 4월 대법원은 자체 조사를 벌여 ‘사실무근’으로 결론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재조사에 들어갔다.

부장판사 3명이 잇따라 비판 글을 올린 것은 추가조사위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추가조사위에 전권을 맡겼다 하더라도 이후 벌어지는 일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불법이 의심되는 행동이 벌어졌다면 차후 대법원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연구관 출신의 다른 판사도 “법관이라면 누구나 현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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