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소방관 가족 … 순직한 아들 기려 2억 기부한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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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일 기부증서를 든 강상주(오른쪽)·김선희 씨 부부와 허동수 공동모금회장(가운데). [사진 공동모금회]

2일 기부증서를 든 강상주(오른쪽)·김선희 씨 부부와 허동수 공동모금회장(가운데). [사진 공동모금회]

“기봉아 내일 네 이름으로 기부하러 간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한 강상주씨 #퇴직 부친 따라 소방관 된 기봉씨 #2년 전 태풍서 주민 구하다 숨져 #“먼저 간 아들과 나눔 이어갈 것”

2018년 새해 첫날인 1일, 제주도에 사는 강상주(63)씨는 아내와 딸과 함께 집 근처 가족묘에 묻힌 아들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아들을 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마치 대화를 하듯….

강씨는 아들에게 약속한 대로 나눔을 실천했다. 본인과 아들 고(故) 강기봉(사진)씨 이름으로 각각 기부금 1억원, 모두 2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올해 1, 2호 회원이 됐다. 강씨가 낸 성금 2억원은 저소득층 청소년의 교육·자립과 주거환경 개선 등에 쓰인다.

강씨는 2일 전화 통화에서 “처음엔 아들 이름으로만 기부할까 생각했지만 이웃을 위해 헌신한 아들과 뜻을 같이 하고자 나란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 부자(父子)는 소방 가족이다. 강씨는 퇴직 소방관이나 아들은 순직 소방관이다. 강씨는 31년간 제주도에서 소방관으로 재직하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시민들을 돕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녹조근정훈장을 받을 만큼 모범적인 소방관으로 인정받았고 2014년 정년퇴직했다.

고(故) 강기봉. [연합뉴스]

고(故) 강기봉. [연합뉴스]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 기봉씨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2015년 울산시 119 구급대원에 합격했다. 수많은 구급 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상주씨는 “아들이 제가 하는 걸 지켜봐서 소방관이 되는 걸 좋아했어요. 저도 남을 구할 수 있는 직업이니 좋아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부자 소방관의 운명을 갈라놨다. 울산 온산119안전센터 소속이던 기봉씨는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에 고립돼 있는 주민들을 구조하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순직했다. 당시 29세, 미혼이었다.

강상주씨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대전 현충원이 아니라 제주도 가족묘에 안장했다.

아들을 보낸 후 강씨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기부가 생각났다. 그는 평소 비영리단체(NPO) 여러 곳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었고, 기봉씨도 남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기봉씨가 순직했을 당시 주변에서 많은 이가 위로하고 도와줬던 점도 기부 결심을 굳히게 했다.

강씨는 “2억원이 큰 돈이지만 아들이 순직했을 때 여러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줬어요. 당연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순직 보상금에다 제 돈을 합쳐서 기부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같이 살면서 조금 더 가까이 하고, 말도 많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가면서 많은 시간을 못 보내서 그게 안타깝다”고 했다.

“앞으로도 아들과 함께 나눔 활동을 이어가려 해요. 기봉이도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흐뭇해할 거 같아요. 많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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