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3시대’ 진입하지만 일자리는 제자리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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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및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김광두(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앞줄 오른쪽부터)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및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 대통령, 김광두(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앞줄 오른쪽부터)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7일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경방)’에는 희망과 불안이 혼재돼 있다. 희망적인 대목은 내년 한국 경제가 2년 연속 3%대 성장을 이뤄내면서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마음껏 기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나쁘다는 건 불안 요인이다.

2년 연속 3%대 경제성장률 목표 #일자리 예산 13% 늘려 19조원 #취업자 증가는 올해 수준 32만 명 #스마트공장·드론 등 규제 없애고 #SOC 건설 등 공공투자 2조 확대 #“정부, 나서지 말고 생태계 조성을”

2년 연속 3%대 성장은 2010년(6.5%)과 2011년(3.7%) 이후 없었던 일이다. 이게 현실화해 내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게 되면 2007년 2만 달러를 돌파한 지 11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게 된다. 한국이 적어도 양적 측면에서는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는 명백한 신호다.

다음 차례는 질적 측면의 선진국 진입, 즉 삶의 질 향상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방 발표 자리에서 “내년을 ‘3만 달러 시대 원년’으로 규정하고, 소득 수준에 걸맞게 삶의 질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삶의 질 개선 없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개국 대상 삶의 질 순위 조사에서 한국은 29위에 그쳤다. 2014년 24위에서 더 후퇴한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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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경제의 환경을 둘러볼 때 목표 달성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당장 삶의 질 향상의 기본 전제인 일자리 문제부터 해결이 어렵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7% 늘어난다. 이 중 34.5%가 1분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1분기 기준 역대 최고 비중이다. 이뿐 아니라 ▶공공기관 및 공무원 신규 채용 규모 확대 ▶중소기업 추가고용 장려금 지원 요건 완화 ▶여성 육아휴직 후 고용 유지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등의 세부 대책들도 빼곡히 담았다.

정작 정부의 내년 취업자 수 증가 폭 전망치는 32만 명으로 올해와 동일하다. 예산과 정책을 총동원해도 고용 상황은 잘해야 제자리걸음이거나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청년 일자리다. 15~29세의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해 연간 기준 9.8%에 달했지만, 정부는 내년에 구직 경쟁이 더 심화하면서 실업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25~29세의 주요 구직 연령대 인구가 올해보다 11만 명이나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자리 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본격화하지만 출생아 수는 바닥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출생아 수는 10월이 돼서야 간신히 30만 명을 넘었다. 사상 최초의 40만 명 붕괴는 기정사실이고 연간 34만~35만 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국제 경쟁력 약화를 고려하면 2%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도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반도체 편중 현상을 탈피하고 균형 잡힌 산업 전략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시 중기지출계획의 상향 조정을 검토하기로 한 이유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재정을 더 많이 투입한다는 의미다.

또 경방에 ▶스마트 공장·드론·자율주행 차 등의 핵심 선도사업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상품·서비스 등장 시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 적용 ▶동거 중인 비혼 가구에 대한 차별 해소 ▶공영형 사립유치원 등 다양한 보육시설 도입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등의 공기업 공공투자 2조원 추가 확대 등 혁신성장 및 중장기 리스크 해소 전략들을 대거 담았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성장이나 고용은 결국 기업이 이끌고 정부나 공공이 보완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모양새”라며 “세계 경제가 좋을 때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의 손발을 다 묶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진정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대신 정부는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장원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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