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은행, 충성고객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9면

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우리 지점은 앉을 자리도 없이 손님이 빼곡한데, 바로 옆 다른 은행은 대기고객이 한두 명이더라고요. 바쁘시면 옆에 있는 은행에 가서 일 보시라고 해도 ‘나는 여기가 편해’라며 계속 오세요.”

개인 고객이 많은 A은행 직원의 말이다. 넘치는 고객들로 창구 일이 너무 바쁘다는 푸념 속에 ‘충성 고객이 많은 은행’이란 자부심이 배어있다. A은행 출신 임원이 맞장구를 친다. “그럼. 개인 고객은 한 은행과 오래 거래하는 게 유리한 법이지.”

A은행의 수십 년 고객인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은행을 바꾼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으신 어르신들, 취재하면서 많이 만났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보낸 사람 : 급여 이체 500,000원’. 지난주 월급날, 내 스마트폰에 깔린 B은행 애플리케이션이 이런 내용의 알림 메시지를 띄웠다. 곧이어 C은행 앱도 비슷한 알림을 보내왔다. 두 은행에 ‘급여 이체’라는 명칭으로 입금한 건 회사가 아니다. 내가 두 달 전부터 D은행 급여통장에 걸어놓은 자동이체가 실행된 결과다.

보낸 사람 이름을 ‘급여 이체’로 설정한 것은 우대혜택 때문이다. 대부분 은행은 건당 50만원 이상 급여가 입금돼야 급여 이체로 인정하고 수수료·금리 우대를 해준다. 입금 건이 급여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까. 입금통장 표시내용에 월급·급여·상여 또는 회사 이름 등이 적혀 있으면 급여로 본다. 따라서 나는 실제 월급이 들어오는 D은행은 물론 B, C은행에서도 모두 급여 이체 실적을 인정받는다.

각종 신용카드 결제가 연결된 실질적인 주거래은행 역시 최근 D은행에서 C은행으로 갈아탔다. 7년 전, A은행에서 D은행으로 주거래은행을 처음 바꿨을 때만 해도 은행 갈아타기는 큰맘 먹고 할 일이었다. 보험료와 신용카드 결제계좌를 바꾸려면 일일이 해당 보험·카드사 콜센터로 연락해야 했다. 그런데 이젠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 ‘내 계좌 한눈에’에 접속만 하면 거의 모든 자동이체를 클릭 몇 번에 옮길 수 있다. 실제 해보니 간단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또 다른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겠다 싶다.

혜택을 좇아 은행을 분산하고 갈아타라. 개인 고객의 새로운 금융 전략이다. 이러한 시대에 과연 은행들은 ‘집토끼’를 지키려 무엇을 해주고 있나. 은행의 고민이 필요하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