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돌담 허무는 헌재, 국민과의 담장도 허물기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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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사회2부 기자·변호사

임장혁 사회2부 기자·변호사

헌법재판소는 25일 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 선사했다. 헌재 도서관을 신축하면서 외곽을 둘러싼 담벼락을 허물고 경내를 시민들이 공원처럼 드나들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전체 700m 정도의 돌담 중 250m 정도가 사라진다. 또 새로 짓는 도서관의 열람실과 북카페를 시민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헌재 관계자는 “도서관 건물은 현재 담장보다 3m 정도 후퇴한 공간에 들어선다. 담장을 헐고 이 공간을 시민에게 제공하면 보다 열린 느낌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이 선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30년 동안 180도로 달라진 헌재의 존재감 때문이다. 1988년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탄생했을 때 헌재에 절실했던 것은 권위였다. 법원 재판에 대해선 위헌성을 심사할 수 없고, 대법원장과 정치권이 헌법재판관 선발에 개입하도록 설계된 제도 등이 태생적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걱정 속에서 출발한 헌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기본권의 보루’라는 기본 역할을 뛰어넘어 정치 권력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2014년 정당해산 심판과 지난해 탄핵심판은 헌재의 권위를 상징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정문 주변 담장을 허문다. 2019년에 공사가 끝나면 이런 모습이 된다. [사진 헌재]

헌법재판소가 정문 주변 담장을 허문다. 2019년에 공사가 끝나면 이런 모습이 된다. [사진 헌재]

위상이 이처럼 높아지는 동안 시민들에게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권력 기관’처럼 비춰졌다. 현재 헌재의 경내로 시민들이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외곽을 에워싸는 경찰의 눈초리를 뚫고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시민은 많지 않다. 재판소 건물 안은 방문 목적을 제시하고 신분을 확인받아야만 볼 수 있다. 그런다 해도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다. 가끔 열리는 공개변론의 동영상 정도가 시민이 볼 수 있는 헌재 활동이다.

담장을 허문 뒤 헌재 뜰에서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다. 주말에 기록을 보러 나온 어떤 재판관은 뛰놀던 어린이의 “헌법이 뭐냐”는 도발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공간 개방은 시민과 함께하는 호흡의 첫걸음이어야 한다. 30년간 쌓인 결정문 너머의 발자취까지 시민들과 공유할 때 그 호흡이 건강해진다. 평의는 비공개로 유지하더라도 그 과정에 활용된 연구 결과와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까지 숨겨둬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시민에게 열린다는 도서관을 채울 내용이 기대된다.

임장혁 사회2부 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