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45. ‘김삿갓’ 에 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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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밴드 '김삿갓'을 만들어 앨범을 낸 뒤 우드스탁에서 공연하던 1998년의 필자.

'나는 청산이 좋아 들어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이하여 나오느냐'.

김삿갓이 금강산을 오르다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지은 즉흥시다. 나는 좋아서 산에 오르지만, 너는 운명으로 인해 내려와야 하는 것을…. 그 짧은 한마디에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았던 게다.

내 체질엔 너무 많은 말을 늘어놓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순발력을 발휘해 순간적인 현상을 포착해내는 김삿갓류의 시가 딱 맞았다. 김삿갓의 그것은 한국 남성만이 발현할 수 있는 기질 아닌가 싶다. 시인이 자신을 '김삿갓'이라 부른 것은 물욕도 명예욕도, 자신의 이름까지도 모두 버리고 순수한 인간으로서 자연을 바라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김삿갓이란 인물에 반해버렸다. 그의 시와 인생이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의 시에 음악을 붙이는 식이었다. 김삿갓은 나의 정신적인 파트너였다. 내가 처음으로 손잡은 작사가이기도 했다. 이전에 낸 200여 장의 앨범에서 작곡은 물론 작사까지 혼자 도맡아했으니 말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찍은 영상물로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의 궤적을 따라 밟으면서….

김삿갓 앨범의 작.편곡은 물론이고 기타.베이스.드럼까지 모두 나 혼자서 했다. 연주인을 쓰면 창작 당시의 감흥이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내용적으로는 지극히 전통적인 정신을 담았지만 기능적으로는 최첨단 기계(컴퓨터)의 힘을 빌린 앨범이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컴맹'과는 거리가 멀다. 1980년대 초부터 컴퓨터를 다뤘다. 그 시절 나는 차에 시동만 걸면 AFKN 방송이 흘러나오게 조작해 뒀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음악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라디오에서 아주 색다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사람이 한 게 아니야. 뭔가 이상한데…'.

바로 컴퓨터 음악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컴퓨터 음악을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곧장 컴퓨터 음악에 관심이 쏠렸다. 대체 어디서 배울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했다. 당시 서울 서초동에 남경전자라는 회사가 있었다. 그곳에 가 보니 이미 몇 사람이 컴퓨터 음악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 같은 전문 음악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컴퓨터가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지 내게 일러줬다. 그땐 IBM 8비트짜리 컴퓨터를 가지고 초창기 음악 프로그램을 다뤘다. 음정이나 박자를 일일이 숫자로 찍어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컴퓨터에 대한 개념을 익혔다. 그리고 지금까지 컴퓨터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50년대부터 음악에 컴퓨터를 사용했다고 한다. 다만 대중적으로 표면화되진 않고 전문가만 다뤘다는 것이다. 그게 대중적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게 80년대다. 컴퓨터 음악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건 90년대다. 그때부터 컴퓨터 음악 전문 프로그램이 나왔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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