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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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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홋카이도의 도마코마이 고교는 고마다이 지방캠퍼스 부설 시골학교다. 이 고교 야구팀 때문에 일본 열도는 두 번이나 난리가 났다. 지난해 이 학교는 일본 고교야구의 최고봉인 고시엔 대회에서 5년 연속 우승했다. 대회사상 57년 만에 일궈낸 기적이었다. 야구부 선수들은 홋카이도가 낳은 영웅이자, 도마코마이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학교 야구팀 때문에 지금 일본은 몸살을 앓고 있다. 우승 주역인 3학년 선수들이 1일 졸업식 날 저녁 추태를 부렸다. 간이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 것이다. 그 여파로 감독은 물론 교장까지 사표를 냈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올해 고시엔 대회에 이 학교의 출전을 금지할 방침이다. "교풍.품위.실력을 함께 갖춘 고교 야구팀을 선발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일본은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고교선수라도 반드시 방과 후에 연습을 하는 게 전통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다. 졸업하는 선배들이 마지막 파티를 하면서 도수 약한 칵테일을 몇 잔 마시고 뻐끔담배를 돌려 피웠을 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의 음주 현장을 신고한 것은 그 지역 어른들이었다. 도마코마이 경찰도 '고향 영웅'들의 사소한 탈선을 눈감아 주지 않았다. 고교 야구는 교육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도 당연하다는 투로 냉정하게 보도하고 있다.

최근 세계 스포츠제전에서 일본은 죽을 쑤고 있다.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하나 건지는 데 그쳤다.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이다. 세계 야구 클래식(WBC)대회 등 일본이 스포츠에 쏟는 관심이나 열기에 비춰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스포츠는 날이 갈수록 빛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정 종목은 금메달을 독식한다고 국제적 시샘을 받고 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대표선수들의 선수촌 이탈, 파벌 갈등 소문에서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다. 과연 한국은 스포츠 강국인가. 언젠가는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체육의 한계가 드러날지 모른다.

도마코마이의 시노하라 가쓰마사 교장은 "이렇게 몽땅 사표를 낼 필요가 있느냐"는 세간의 동정론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기술만 뛰어나다고 안 됩니다. 고교 운동선수는 올바른 마음과 기술, 체력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학생의 본분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책임을 스스로 엄중히 묻고자 합니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