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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우파 피녜라 재집권 … 퇴조하는 남미 ‘핑크 타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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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7일 우파 야당 ‘칠레 바모스’ 후보로 출마해 대선 승리를 확정지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일 우파 야당 ‘칠레 바모스’ 후보로 출마해 대선 승리를 확정지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바스티안 피녜라(68) 전 칠레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치러진 칠레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했다.

2009년에도 우파로 정권 교체 이뤄 #아르헨·브라질·페루는 이미 우파 #온두라스도 최근 중도우파 승리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개표가 92% 넘게 진행된 상황에서 우파 야당 ‘칠레 바모스(칠레여 가자·CV)’ 후보로 나선 피녜라 전 대통령은 득표율 54.4%를 기록했다. 미첼 바첼레트 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한 집권 여당인 중도 좌파 연합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NM)’의 알레한드로 기예르 후보는 45.5%를 득표했다.

지난달 18일 치러진 1차 대선 투표에서 피녜라 후보는 득표율 36.64%, 기예르 후보는 22.7%를 차지했다. 결선 투표에선 분산됐던 좌파 후보들의 표가 결집해 두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피녜라 전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여유 있게 경쟁자를 따돌렸다. 기예르 후보도 패배를 인정했다. 피녜라 전 대통령은 연임은 금지하지만 중임은 허용하는 칠레 헌법에 따라 이번 대선에 출마했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2009년 대선에서 승리해 2010~2014년 대통령을 지냈던 인물이다. 당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4~90년 집권) 독재 정권 이후 칠레에서 20년간 이어진 좌파 집권 시대를 끝내고,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정계 입문 전 성공한 사업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신용카드 사업, 항공사·방송사·축구 구단 등을 소유하면서 모은 재산은 미 경제지 포브스 추산 27억 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억만장자 사업가 이력 때문에 이탈리아의 미디어 재벌이자 프로축구 AC 밀란의 구단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비견되기도 한다.

90년 수도 산티아고의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2001∼2004년 우파 정당인 국민혁신당(RN) 대표를 맡아 보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대통령으로 재임 중 그는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의 주요 공약은 경제였다. 현재 2%가 안 되는 경제성장률을 5%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피녜라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 사회주의 물결)’ 퇴조는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아르헨티나·브라질·페루에선 우파가 집권해 정치 지형이 바뀌었고, 온두라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날 대선 뒤 3주간 이어진 부정선거 시비에 종지부를 찍고 중도 우파인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10년간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에 기대 온 중남미 경제는 휘청였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 역시 구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시장의 변화로 경제지표가 나빠지자 분배보다는 성장과 풍요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 좌파 퇴조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중남미 좌파의 몰락을 언급하기는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례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여전히 집권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이 건재하다.

문병주·홍주희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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