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사건 은폐 혐의 용산서장,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

중앙일보

입력

남재준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남재준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국가정보원 사법방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남재준(73) 전 국정원장과 하경준(61) 전 국정원 대변인을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11일 기소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남 전 원장은 사법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도 받게 됐다.

검찰 수사 대비해 '위장 사무실' 조성하고 #재판서 증인들에 허위 진술 등 지시한 혐의 #"김병찬, 국정원 직원과 58차례 통화" #노트북 키워드 '100개→4개' 축소 지시 혐의도

검찰은 이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을 은폐하고 국정원 측에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김병찬(49) 용산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남 전 원장은 2013년 4월 원세훈(66) 전 국정원장 재임 때 벌어진 국정원 정치개입 사실을 파악하고도 당시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이 시기 국정원 내부에 ‘현안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검찰 수사와 재판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날 남 전 원장이 TF 구성을 지시하며 ”정권의 명운과 국정원의 존폐가 걸려 있으니 개인 일탈로 치부하고 반드시 무죄를 받도록 적극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현안 TF는 2013년 4월 말 특별수사팀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허위 서류와 컴퓨터 등을 비치해 놓은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었다. 또 같은해 5월 검찰로부터 원 전 원장의 부서장 회의 녹취록 제출을 요구 받자 문제가 되는 문구를 삭제해 제출하고, 증인으로 나선 직원 8명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6일 현안 TF 구성원인 장호중(50) 전 부산지검장과 서천호(56) 전 국정원 2차장 등 6명을 구속기소한 검찰은 남 전 원장과 하 전 대변인을 공범으로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위장 사무실 조성(위계공무집행방해), 녹취록 문구 삭제 지시(국정원법 위반), 허위 진술 지시(위증교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하 전 대변인에 대해선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대북 심리전 일환이었다는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를 추가 적용했다.

지난 11월 28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김병찬 용산경찰서장. 김경록 기자

지난 11월 28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김병찬 용산경찰서장. 김경록 기자

검찰은 김병찬 용산서장(당시 서울청 수사2계장)의 혐의와 관련해서는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의 공소시효(5년)가 곧 만료돼 불구속으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2년 12월 14일 서울청 포렌식팀은 수서경찰서의 의뢰로 국정원 여직원 하모씨의 노트북 분석을 진행했다. 포렌식팀은 아이디와 닉네임이 게재된 텍스트 문서 파일을 복원해 경찰 내부에 보고했다. 김 서장은 다음날(15일) 국정원 직원에게 연락해 “상황이 좀 심각하다. 정치관여성 댓글이 확인된다. 키워드를 3~4개로 줄여서 검색하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앞서 경찰이 100개의 키워드를 기준으로 분석해 국정원의 댓글 활동이 드러나자 김 서장이 이를 4개로 줄여 사건을 축소하려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김 서장이 국정원 직원과 2012년 12월 11일부터 다음해 6월까지 총 58회(음성통화 29회 124분, 문자29회) 연락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여직원 사건이 불거진 시기에 46회의 연락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김 서장은 2013년 11월 이후 진행된 김용판(59) 전 서울청장의 대선개입 사건 공판과 권은희(현 국민의당 의원) 전 수서서 수사과장의 모해위증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서장이 범행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수사 기밀을 누설하고 키워드 축소와 관련해 권 전 수사과장과 언쟁을 벌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등 수차례 위증을 했다”고 전했다.

김 서장이 기소됨에 따라 김용판 전 청장 등 당시 경찰 수뇌부에 대한 추가 수사가 이뤄질 지 주목된다. 앞서 김 전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법 위반 등 다른 혐의가 발견될 경우 원칙적으로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혐의가 확인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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