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비급여 확 줄이는 ‘문재인 케어’ … 진료 수가 적정화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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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문재인 케어 반대 및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반대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문재인 케어 반대 문구가 들어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왼쪽) [뉴스1]

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문재인 케어 반대 및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반대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문재인 케어 반대 문구가 들어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왼쪽) [뉴스1]

대한의사협회 산하 국민건강수호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사 3만 명(주최 측 주장)이 10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 모였다. 건강보험의 의료비 보장을 대폭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며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의사 장외집회는 2013년 원격의료 반대시위 이후 4년여 만이다.

의사 3만 명 시위 #건보 진료 수입만으론 병원 적자 #보험 안 되는 비급여로 보완해와 #정부, 건보 보장 확대 방향 맞지만 #보험료 인상 불가피 국민 설득하고 #진료 원가 따져 부족분 채워줘야

이들은 “비급여는 악이 아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 필수·응급의료 확충이 우선”을 주장하며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의 캐리커처를 내세우기도 했다. 문재인 케어는 전체 의료비의 16.5%에 달하는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해 건보의 의료비 보장률을 63.4%에서 70%(2022년)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31조원을 투입한다.

의협 비대위의 핵심 주장은 비급여의 급여화 반대다. 비급여는 초음파·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의 검사, 각종 수술비와 치료 재료 등 건보가 안 되는 진료비를 말한다. 큰 병원에 갈수록 많다. 비급여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의료에 들이는 돈(건강보험료·예산 등)이 적어 진료비의 63.4%만 건보가 커버한다. 나머지(36.6%)는 비급여나 법정 환자 부담 몫이다. 둘 다 환자 주머니에서 나간다.

의료는 일반 공산품과는 달라 기업(의료기관)이 값을 정할 수 없다. 정부가 가격(수가)을 정하는데 환자 부담을 줄이려 원가보다 낮게 책정한다. 대한병원협회는 진찰료·입원료 같은 기본진료 수가가 원가의 50~54%라고 추정한다. 수술·처치·검사 등을 합한 전체 수가는 89.6%다. 건보 진료 수입만으로는 병원이 적자를 면하지 못한다. 이걸 벌충하고 신규 투자 재원을 조달하는 장치가 비급여다.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없어선 안 되는 제도다.

정부·환자·의사 3자가 모두 만족할 방안이 있을까. 정부가 ‘비급여의 급여화’를 하면서 수가를 원가에 맞게 정하면 된다. 기존 저수가 항목도 끌어올리면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보장성 강화정책을 발표하면서 “의료계의 걱정도 잘 알고 있다. 비보험(비급여)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하도록 적정한 보험 수가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적정 수가-적은 환자 부담’은 병립하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연간 보험료 인상률을 3% 이내에서 묶겠다고 밝혔다. 수가를 보장하려면 누군가 돈을 더 내야 하는데 보험료를 약간 올리겠다고 하니 실현 가능성에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요즘처럼 세수가 잘 걷히면 보험료도 잘 걷힌다. 정부가 이것만 믿지 말고 ‘더 내고 더 받자’고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데 계속되는 선거를 고려해 이렇게 할지 의문이다.

이필수 의협 비대위 위원장은 10일 “대통령은 수가를 보장해 준다고 하지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여전히 저수가를 조장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정심은 수가를 결정하는 기구다. 하지만 정부와 의사가 보는 ‘원가’의 개념에 차이가 커 향후 갈등이 끊이지 않을 듯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가 비급여를 ‘악’으로 규정한 적은 없다. 다만 비급여가 재난적 의료비의 원인이기 때문에 건보 보장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비급여를 없애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가 성공하려면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다. 비대위는 이날 ‘문 케어’를 ‘뭉케어’로 희화화했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를 줄이고 의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개혁이다.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걸 폐지하자는 의료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완이 맞다. 의협 비대위는 ▶우선순위에 따른 보장성 강화 ▶중증·필수 의료, 취약계층 보장성 강화 ▶급여전환위원회 신설 및 급여평가위원회 의협 참여 등을 요구했다. 이 주장이 그리 무리한 주장은 아닌 듯히다. 정부가 의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협이 제시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속히 대화의 자리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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