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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첫날 1억7400만원 땄다, 지금은 ‘도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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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17 도숙자(賭宿者) 리포트 <상>

“나흘 전 주문한 연탄이 아직 소식이 없네….” 강원도 정선군에 사는 박영희(56)씨는 집 안의 연탄 쌓는 공간을 바라보며 한숨 쉬듯 말했다. 지난 15일 고한읍 외곽의 허름한 월셋집에 붙어 있는 온도계는 1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냉기 가득한 방 안의 지름 약 60㎝ 반상 위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한 깡통, 담배 한 갑, 전당포 이름이 새겨진 라이터가 놓여 있었다. 보증금 없는 월세 60만원짜리 이 집은 10년 전만 해도 박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엘리트 무용수 출신 사업가의 몰락 #정선 골프 갔다가 ‘카지노 출퇴근’ #수십억 재산, 1년도 안 돼 날려 #돈 빌려 도박 → 식당일, 10년 반복 #“좀 따서 정선 뜨는 게 내 목표”

그는 수십억원을 가진 부유층이었다. 엘리트 무용수 출신의 자영업자였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무용학과(80학번)를 졸업했다. 과일 도매업을 한 부친 덕분에 풍족하게 자랐다. 대학 졸업 뒤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의 극장식당 ‘가야금’에서 무용수로 일하기도 했다.

결혼한 뒤인 1996년 일본으로 이주했다. 사업가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일본식 고기구이 ‘야키니쿠’ 가게, 마사지숍, 선술집을 9년 동안 운영했다. 제법 큰돈을 만졌다. 그는 “100억원까지는 안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만난 한 ‘도숙자’는 카지노 칩을 지니고 다녔다. 10만원·1만원·1000원짜리 칩으로 11만6000원어치였다. 카지노 안에 있는 환전소에서 현금화할 수 있지만 어차피 다시 사용할 것이어서 굳이 바꿀 이유도 없다. 그의 재산 대부분이 이 칩으로 바뀌었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준호 기자]

강원도 정선에서 만난 한 ‘도숙자’는 카지노 칩을 지니고 다녔다. 10만원·1만원·1000원짜리 칩으로 11만6000원어치였다. 카지노 안에 있는 환전소에서 현금화할 수 있지만 어차피 다시 사용할 것이어서 굳이 바꿀 이유도 없다. 그의 재산 대부분이 이 칩으로 바뀌었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준호 기자]

2004년 귀국해 2년 뒤 이혼했지만 생활 수준에 큰 변화는 없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운영하던 갈빗집과 호프집, 감자탕집 사업이 잘됐다. 그의 삶을 집어삼킨 재앙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쳐 왔다.

2007년 친구 셋과 정선에 있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이후 심심풀이로 카지노에 들렀다. “공 치러 왔다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이렇게 망가질 거라고는….” 박씨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날 카지노에서 1억7400만원을 땄다. 그 돈으로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22평짜리 아파트를 1억4000만원에 샀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큰판에서 놀았다. 첫날 통장 잔고 5000만원 이상 인증을 하고 VIP 회원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첫날 대박’ 경험은 ‘카지노 출퇴근’으로 이어졌다. 금요일이면 강원랜드 카지노를 들러 일요일 오후 늦게 의정부로 퇴근했다. 아들 둘은 전 남편에게 보냈고 주말 장사는 종업원에게 맡겼다.

블랙잭(카드의 합이 21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 몰두했다. 많이 잃을 때는 하루 2000만~3000만원, 보통은 700만~1000만원을 잃었다. 종종 1000만원 이상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잃는 속도를 따라잡진 못했다. 재산을 탕진하는 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그는 강원도 태백시로 이사했다. 본전 생각에, 카지노 생각에 강원랜드와 차로 20분 거리인 곳에 진을 쳤다. 카지노 출입 3개월이 넘어갈 때쯤 그는 가게 세 곳을 모두 급하게 처분했다. 가장 장사가 잘됐던 감자탕집을 빼놓고는 권리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백시에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카지노로 갔다. 오전 10시 개장 때 게임을 시작하면 이튿날 오전 6시 폐장 때가 돼서야 나왔다. 편도 2만~2만5000원짜리 택시를 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지금 사는 강원랜드 인근의 고한읍 월셋집이다.

박씨는 10년 가까이 뚜렷한 생계 수단 없이 살고 있다.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몸이 아프면 쉬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닷새에서 열흘 사이에 1할(10%) 이자가 붙는 ‘꽁짓돈’을 빌려 도박을 한다. 돈을 조금 따거나 일을 해서 빚을 갚고, 카지노에 가기 위해 또 돈을 빌리는 삶을 그는 ‘생활도박’이라고 표현했다.

정선에서 산 지 10년이 됐지만 박씨의 주민등록지는 여전히 의정부시다. 정선군민은 카지노 출입 횟수가 월 1회로 제한된다.

‘도숙자’ 1000여 명 추산 … 택시 몰고 식당서 일해 

“여기 있는 건 오로지 카지노 때문이다. 대박을 노리는 게 아니다. 좀 따서 이 동네를 뜨는 게 내 목표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는 병이 들고도 치료받지 못한 채 객사하는 사람을 보면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무용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처음 발을 들인 게 후회도 된다. 하지만 카지노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도박에 빠져 재산을 잃고 객지에서 떠도는 이들. ‘도숙자(賭宿者·도박+노숙자)’로도 불리는 그들의 삶은 비참했다. 강원도 도박센터는 사북·고한 지역에 ‘도숙자’가 1000명 정도 있다고 추산한다. 지역 주민이 약 1만 명이니 이 지역에 사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도숙자인 셈이다.

도숙자들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번다. 대리운전기사, 택시기사,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퇴근 뒤 카지노로 향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법인택시 기사의 30~40%, 식당 종업원의 70% 이상이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찜질방이나 차에서 살고 기초생활수급비나 구걸로 연명하는 이도 있다. 이 지역에서 도박 중독 상담을 하는 방은근 고한남부교회 목사는 “3~4년 떠돌이 생활을 하다 2015년 폐암으로 숨진 6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병원비를 쥐여주면 곧바로 카지노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 글 싣는 순서 >
<상> 엘리트 무용수 출신 사업가의 몰락
<중> 죽어서야 떠나는 사람들
<하> 한탕 도시를 관광 명소로

정선=한영익·김준영·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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