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세] 나라꼴 갖춰도 국제사회 외면, 지도에 없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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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소말릴란드, 아프리카 55번째 국가 될까

‘해적의 바다’ 아덴만 연안엔 지도에 없는 국가가 있습니다.
국가의 3요소라는 국민·영토·주권을 갖췄지만, 누구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미승인 국가’ 소말릴란드 공화국(Republic of Somaliland·이하 소말릴란드)입니다.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아프리카의 미승인국가 소말릴란드

수도는 하르게이사, 인구는 350만 명. 독립한 지 25년이 넘었고 자국 통화(소말릴란드 실링)도 갖고 있습니다. 정부를 구성해 멀쩡한 국가처럼 돌아가고 있죠.
그러나 어디와도 수교를 맺지 못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을 못 해 올림픽·월드컵에도 나서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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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말릴란드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만인 21일, 소말릴란드 선거관리위원회는 현 집권당인 평화통합개발당의 무세 비히 아브디가 득표율 55.1%로 승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정선거 시비가 붙어 개표가 지연되고 시위가 벌어져 2명이 숨지긴 했지만, 소말릴란드 대선은 “동부 아프리카에서 좀처럼 드문 사건”으로 전 세계 언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야에서 3명이 입후보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평화적인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만으로도 독재가 판치는 아프리카의 모범 사례가 됐다는 호평입니다.
심지어는 중복 투표 등을 막기 위해 유권자 홍채 인식 확인 절차를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소말릴란드는 이번 선거에 무척 고무된 분위기입니다. 선거를 계기로 보란 듯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겠다는 겁니다,
이번 [고보면 모있고 기한 계뉴스]에선 국제 미아 신세인 소말릴란드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독립 선포 닷새 만에 강제 합병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지역에 국가는 공식적으로 소말리아뿐입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데다, 총체적으로 치안이 열악해 외교부가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한 나라죠.

지난 13일 소말릴란드의 수도 하르게이사에서 한 여성이 대선 투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 소말릴란드의 수도 하르게이사에서 한 여성이 대선 투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유럽 열강이 식민 통치할 때 소말리아 영토는 쪼개져 있었습니다. 영국이 북부를, 이탈리아가 남부를 통치했습니다.

1960년 6월 26일 영국에서 독립한 북부는 독립 국가  ‘소말릴란드(State of Somailand)’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닷새 뒤엔 남부가 독립해 소말리아 공화국을 세워 소말릴란드를 강제 합병합니다.
소말릴란드는 단 닷새 동안 존재한 국가라는 기록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죠.

거의 100년간 분리돼 있던 남·북부는 통합 뒤 줄곧 갈등합니다.
부족 갈등이라는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69년~91년 집권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자신의 부족에게만 권력을 몰아주고, 다른 부족은 차별·배척한 겁니다.

이에 반발한 다른 부족들은 연합해 90년 바레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이내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을 벌입니다. 지금까지 진행 중인 소말리아 내전의 시작이었죠.
이 와중에 이사크족의 소말리아국민운동(SNM)이 북부를 점령해 독립을 선포합니다. 닷새 만에 사라진 국가를 승계한 소말릴란드 공화국의 탄생입니다.

소말릴란드 대선에선 중복 투표를 막기 위한 홍채 인식 확인 절차가 최초로 도입됐다. [아프리카뉴스 캡처]

소말릴란드 대선에선 중복 투표를 막기 위한 홍채 인식 확인 절차가 최초로 도입됐다. [아프리카뉴스 캡처]

승인국보다 나라 꼴 갖춘 미승인국

신생국가는 빠르게 안정을 확립했습니다. SNM은 독립 2년 만에 시민정부에 권력을 이양했습니다.
‘총이 무너뜨릴 수 없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며 내전에 참가했던 민병들의 총기 회수 운동도 벌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자발적인 무력 분쟁 종식이었습니다.

해적질과 테러가 난무하는 소말리아와 달리 소말릴란드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치안을 유지하면서 국가를 운영했습니다.
2008년엔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당한 프랑스인 구출 작전을 지원해 국제 사회와 협력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승인국가보다 미승인국가가 더 나라 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국제 사회는 소말릴란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부족이 존재하는 아프리카에서 특정 부족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 분리주의를 조장해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말릴란드 독립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소말릴란드 독립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남수단이 수단에서 독립했고, 서사하라도 1975년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로코로부터 독립해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서사하라의 경우 유엔 가입도 하지 못하는 등 온전하게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50개국 이상에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단 한 국가도 인정해주지 않는 소말릴란드와는 처지가 다른 거죠.

정치 건전성 불구, 개도국 지원도 못 받아

다음 달 13일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아브디 당선인은 소말리아 공군 출신으로 SNM에 투신해 소말릴란드 독립운동을 벌인 인물입니다. 독립 정부에선 내무장관을 지냈고요.
이런 배경을 가진 그가 대통령으로서 핵심 과제로 내세운 것이 국제사회 승인 획득입니다.

발 빠른 움직임도 시작됐습니다.
지난 23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매체 내셔널엔 “소말릴란드의 새 정권이 UAE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 4월 소말릴란드는 베르베라에 UAE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9000만 달러(약 976억원) 상당의 계약을 UAE와 맺었습니다.
베르베라는 예멘 남부에서 260㎞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덴만 연안의 항구도시입니다. UAE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격퇴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에 가담하고 있고요.
중동 정세가 격변하는 가운데, 아라비아 반도와 근접한 소말릴란드가 그 가치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13일 치러진 소말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무세 비히 아브디 대통령 당선인. [AP=연합뉴스]

지난 13일 치러진 소말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무세 비히 아브디 대통령 당선인. [AP=연합뉴스]

국제 사회 승인이 새 정권 최대 과제

미국과 유럽국가들, 국제금융기구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할 때 종종 정치적 건전성을 조건으로 내세우곤 합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소말릴란드는 이 조건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미승인 국가라는 이유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우간다 등 악명 높은 독재 국가들은 조건에 미달하는데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의 지원을 받습니다. 이 돈이 독재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데도 서방은 묵인하고 있고요.
소말릴란드는 무척이나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재 아프리카엔 국제 사회의 온전한 승인을 받은 54개 유엔 회원국이 있습니다.
소말릴란드가 염원대로 국제적 승인을 얻고, 아프리카의 55번째 유엔 가입국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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