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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떼군단 뚫은 손, 또 꿀맛 같은 골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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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토트넘의 손흥민(오른쪽)은 독일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펄펄 난다. 22일 챔스리그 경기에선 상대 수비수 라파엘 게레로를 피해 ‘손흥민존’이라고 불리는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골망을 흔들어 결승골을 터트렸다. [도르트문트 EPA=연합뉴스]

토트넘의 손흥민(오른쪽)은 독일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펄펄 난다. 22일 챔스리그 경기에선 상대 수비수 라파엘 게레로를 피해 ‘손흥민존’이라고 불리는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골망을 흔들어 결승골을 터트렸다. [도르트문트 EPA=연합뉴스]

“소니(Sonny)! 도대체 왜, 어떻게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골을 많이 넣는 겁니까.”

유럽 챔피언스리그 현장 르포 #손흥민, 조예선 5차전서 역전골 #도르트문트전 10경기 8골 기록 #독일 취재진 “왜 강한가” 질문 세례 #손 “자신감 갖고 재미있게 경기” #일본 기자도 “과감한 슈팅 돋보여”

22일 독일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의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공격수 손흥민(25)이 20명의 독일(키커, 빌트지 등), 잉글랜드 취재진에 둘러싸여 받은 질문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도르트문트전을 마친 뒤에 독일, 잉글랜드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손흥민.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유럽 챔피언스리그 도르트문트전을 마친 뒤에 독일, 잉글랜드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손흥민.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도르트문트(독일)와의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려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1-1로 맞선 후반 31분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슛으로 골망 상단을 흔들었다.

2013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 도르트문트는 노랑색과 검정색이 조화를 이룬 유니폼을 입어 ‘슈바르츠 겔브(Schwarz gelb·검정 노랑)’ 또는 ‘꿀벌 군단’이라 불린다.

독일 도르트문트 지그날 이두나 파크의 도르트문트 구단 팬샵. 구단의 상징인 꿀벌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다.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독일 도르트문트 지그날 이두나 파크의 도르트문트 구단 팬샵. 구단의 상징인 꿀벌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다.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그런데 손흥민은 꿀벌 구단만 만나면 펄펄 난다. 그래서 그에겐 ‘양봉업자’ ‘꿀벌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시절을 포함해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벌집을 뒤흔들 만한 맹활약을 펼치기 때문이다.

독일 도르트문트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 꽉 들어찬 도르트문트 홈 관중들.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독일 도르트문트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 꽉 들어찬 도르트문트 홈 관중들. 도르트문트=박린 기자

이날 손흥민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번째 경기에서 8번째 골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지난 9월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는 50m를 질주한 끝에 골을 뽑아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에 앞서 에이전트인 티스 블리마이스터(독일)가 그에게 “오늘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골을 넣을거냐”고 물었는데 손흥민은 보란 듯이 골을 터트렸다.

8만여 명을 수용하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를 가득 메운 도르트문트 팬들은 손흥민의 골이 터지자 침묵을 지켰다. 도르트문트 팬들에게 손흥민은 리오넬 메시(30·바르셀로나) 만큼 위협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손흥민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2호골이자 시즌 4호골을 터트린 덕분에 토트넘(4승1무·승점13)은 조 1위로 16강행을 확정했다. 반면 도르트문트(2무3패·승점2)는 조 2위까지 나갈 수 있는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도르트문트는 수비진 붕괴와 피터 보츠 감독의 전술 부재로 최근 9경기에서 단 1승에 머물렀는데 손흥민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동점골을 기록한 토트넘 공격수 해리 케인(24·잉글랜드)은 “손흥민의 골은 환상적이었다”고 칭찬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손흥민을 향해 ‘수퍼 피니시’라고 극찬했다. 영국 축구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손흥민에게 올 시즌 최고평점인 8.3점(10점 만점)을 줬다.

유창한 독일어와 영어로 인터뷰에 응한 손흥민은 “함부르크(2010~2013년) 시절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골을 넣어 자신감이 있다. 재미있게 경기를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김환 JTBC 해설위원은 “도르트문트는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압박을 펼치는데, 뒷공간을 공략하는 손흥민에게는 유리한 전술이다”며 “이제는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도 적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표팀에서도 최전방 공격수로 뛰면서 자신감이 더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를 마친 손흥민에게 ‘양봉업자’ 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다. 손흥민은 “좋은 별명을 지어주셔서 감사하다”면서도 “그런 별명만 갖고 있을 순 없다. 더 좋은 별명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꿀벌 킬러’를 넘어 ‘세계축구계의 킬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경기 시작 전 도르트문트 팬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보더니 “가가와”를 외쳤다. 도르트문트의 일본인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29)를 응원하러 온 일본기자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반면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 “코리아”를 외치며 기자에게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이날 가가와가 도르트문트의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하면서 ‘미니 한일전’이 펼쳐졌다. 가가와는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후반 21분 교체됐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일본 매체 프롬 원의 고타 미나토 기자는 “손흥민은 과감한 슈팅이 돋보인다. 정신력도 뛰어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양봉업자’ 손흥민의 도르트문트전 기록

▶ 함부르크 소속
2010년 11월12일 무득점(25분) 0-2패
2012년 9월22일 2골(풀타임) 3-2승
2013년 2월9일 2골(풀타임) 4-1승

▶ 레버쿠젠 소속
2013년 12월7일 1골(82분) 1-0승
2014년 4월26일 무득점(풀타임) 2-2무
2014년 8월23일 무득점(75분) 2-0승

▶ 토트넘 소속
2016년 3월10일 무득점(76분) 0-3패
2016년 3월17일 1골(풀타임) 1-2패
2017년 9월13일 1골(83분) 3-1승
2017년 11월22일 1골(풀타임) 2-1승
→ 10경기 8골, 6승1무3패

도르트문트(독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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