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중국이 북핵 해결에 스스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 버려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지혜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과 평창올림픽 구상 성공할까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해법 시계’는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맞춰져 있다. 중국과 서둘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로 인한 갈등을 매듭지은 것도(10·31 한·중 관계 개선 공동 발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것도(11월 11일), 문 대통령의 12월 방중을 확정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이른바 ‘평창 구상’의 사전 준비작업이었다.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제안 #중국, 능력은 있지만 의지가 없어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꽃놀이패 #평창 올림픽과 북핵을 연계하는 건 #협상 주도권을 날려버리는 셈

문제는 너무 많은 ‘만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만약 12월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로 마음먹는다면, 만약 북한이 추가 도발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만약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나 중단을 미국과 합의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가장 큰 ‘만약’은 ‘북한이 전략적 셈법을 바꾸겠다는 의도로 평창 올림픽에 참석한다면’이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분과장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 위원들은 평창 올림픽과 북핵 문제를 지나치게 연결하는 것을 경계했다. 평창 올림픽과 관계없이 지금의 한반도 외교안보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대북 비전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위 교수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구상했던 청사진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지 말란 것도 아니다”면서도 “이런 구상이 현실 상황과 맞지 않는다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미국 주도의 압박 국면이므로 북한이 평창에 오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계기도 만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맞지 않는데 맞아들어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이 설사 평창에 온다 해도 이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일 뿐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국가 지도자들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다고 생각하지 방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국제문제와 남북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북한 3인방’(황병서·최용해·김양건)이 깜짝 방남해 폐막식에 참석한 예를 들며 “이후에도 북한은 도발을 계속했다. 관계개선 의지가 아니라 선수 격려 등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위해 온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평창 올림픽과 북핵을 연계시키면서 일부에서 시기가 겹치는 한·미 연합훈련 연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전체적인 북한 비핵화 구도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부터 나오면 중요한 협상 주도권을 날려버리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로서는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에 집중할 때라는 의미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평창 올림픽과 비핵화를 연결짓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2~3개월 이내에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결할 수 있다고 미국에 협상을 제안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응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는데 그렇다고 북한이 비핵화로 갈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식으로 북·미 협상이 재개되면 미국은 점진적 비핵화를 위한 동결이라고 오히려 한·일을 설득하면서 (미국을 겨냥한 공격에 대한) 억제력을 갖추는 데만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동결에 대한 영수증은 모두 우리에게 날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은 ‘평창 구상’에 몰두하기보다는 압박이 심화된 후에 북·미 협상이 시작될 경우 우리가 지분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의도는 모르겠지만, 북한이 60일 이상 도발을 멈추면서 결과적으로는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 완성 이전에 마지막으로 운신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정치적 의지를 보이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면이 더 경색되기 전에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한·중 관계는 현안이 없을 때는 밀월을 유지하는 듯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라는 대형 악재가 터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은 중국이 대북 제재를 통한 비핵화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원망했고, 중국은 나름 노력했는데도 한국이 일절 상의도 없이 사드 배치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을 서운해했다.

신 전 대사는 “그동안 보수나 진보나 구별 없이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가 너무 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핵 해결을 위한 ‘능력’은 있어도 쓸 ‘의지’가 없고, 북한 역시 중국이 자신들이 하려는 일에 방해꾼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을 전략자산으로 보는 중국은 꽃놀이패이고, 그래서 북한이 모든 대화는 미국과 하겠다고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중국의 ‘자발적인’ 협조를 받아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라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해관계가 그대로인데, 우리가 외교를 통해 중국의 대북정책을 바꿀 순 없다”고 조언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도 천안문까지 올라 빛을 내주면 중국이 마음의 빚 때문에 자국 이익에 반해서 북핵 문제에 나서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런다고 중국의 대북 전략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11/22

윤 전 원장은 “북한은 한·중을 빼고 미국과 직접 교섭해 일정 부분 핵무장을 하겠다는 전략이고, 중국은 북핵이 베이징이 아닌 서울과 도쿄와 워싱턴을 겨냥한 것이라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중국에 너무 기대하고 있다가 사드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중국의 민낯을 봤다”며 “과거로 다시 돌아가 ‘중국을 통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식의 대중 전략을 취할 단계는 지났고, 향후 점차 심해질 미·중 간 대결까지 고려하면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19차 당 대회를 계기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다소간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소장은 “중국도 당 대회가 끝나고 나서 북핵 문제에 돌파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19차 당 대회 이후 나온 보고서 등을 통해 중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자신감이 커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중국이 주도권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북한을 압박하는 문제는 조금 정리가 되면 새로운 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