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 외교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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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둘러싼 한·중 갈등 ‘봉인(封印)’이 보름도 안 돼 풀려 버린 것인가. 지난 10월 31일 합의 이후 청와대는 “중국이 더 이상 사드 문제를 거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한데 중국 지도자들이 잇따라 우리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해 어안이 벙벙해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1일 사드와 관련, “한국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던졌다. 13일엔 리커창 총리가 “중·한이 사드 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한국은 걸림돌을 치우라”고 주문했다. 듣기 매우 거북한 중국의 압박들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외교라인의 안이한 인식과 서툰 대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과 리커창을 만나기 전 청와대는 “사드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회담 후에도 “사드 관련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가 중국 발표에 따라 추가 브리핑을 하는 소동을 빚었다. 무엇이 두려워 사드 문제가 논의된 것을 덮으려 했나. 특히 리커창의 사드 단계적 해결 발언은 중국과 모종의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일각의 의혹에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다.

아마추어 우리 외교에 걱정이 깊어진다. 대표적인 게 10·31 합의에서의 3불(三不) 표명이다. 안보 주권을 스스로 외국에 저당 잡히는 나라가 어디 있나. 더 이상 중국 외교에 끌려다녀서는 곤란하다. 앞으론 중국과의 협상 결과를 투명하게 밝혀 중국이 자의적으로 합의 내용을 왜곡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특히 중국에 ‘백지 수표’를 줬다는 말을 듣는 3불에 대해 ‘원칙’이나 ‘약속’ 등의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3불은 우리의 ‘입장’ 정도로 정리해야 한다. 입장은 상황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원칙’이라 쓰면 중국의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