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귀순 북한 병사에 나타난 충격적인 북한 위생상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상을 입고 귀순한 북한군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의 열악한 위생환경은 충격적이다. 이 병사는 귀순 과정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긴급 후송됐지만 중태다. 아주대병원 측은 이 귀순자의 총상 치료도 쉽지 않지만 환자의 장기 속에 든 엄청난 양의 기생충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아덴만 여명작전 때 해적의 총상을 입었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센터장은 어제 “이 환자가 기생충으로 합병증을 초래하고 수술 뒤의 예후도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장을 가득 채운 기생충에는 회충을 비롯해 길이가 30㎝나 되는 한국인에게는 잘 나오지 않는 종류도 있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총상을 입은 이 귀순자 사례는 북한 위생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군은 물론 북한에 살고 있는 대부분 주민들도 기생충 감염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그나마 북한군에는 식량을 어느 정도 배급해 주지만 주민에게는 거의 단절한 상태다. 평양을 제외하고는 북한 전역에 대한 배급이 멈춘 지 오래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온갖 방법으로 획득한 식량을 때로는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채 날것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한에선 채소 등의 재배에 인분을 사용하는 것이 예사다. 그러다 보니 기생충 감염이 사슬처럼 악순환되는 것이다. 홍성태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는 “2005년 중국 연변대학이 함경북도 회령시 주민의 회충 감염률을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50년 전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 북한 사회에는 안전한 위생은 고사하고 구충제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 김정은 정권은 모든 예산을 쏟아부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부터 먼저 챙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