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원도 당했다…'성폭로 청문회'가 밝힌 미 의회의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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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보좌관이 남성의원 부름으로 자료를 갖다 주러 갔다. 의원은 목욕 타월 차림이었고 여성에게 들어오라고 한 뒤 타월을 벗어젖혔다. 그 일로 보좌관은 그만 뒀지만 해당 의원은 아직도 현역 재직 중이다."(바버라 콤스톡 공화당 하원의원)

“숱한 여성들이 내게 의회에서 겪은 성희롱·성추행을 털어놓았다. 의사당 복도에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움켜쥔 의원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연루된 이들 중 두 명이 지금도 자리에 있다. 한명은 공화당, 한명은 민주당이다.”(재키 스피어 민주당 하원의원)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행정위원회에서 의회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 [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행정위원회에서 의회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고 있는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 [AP=연합뉴스]

미국 의회민주주의의 성소(聖所) 의사당이 충격적 폭로 무대가 됐다. 국민을 대표하며 봉직하는 이들의 낯부끄러운 월권과 추태 행각이 같은 동료 의원의 증언을 통해 공개됐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웨인스타인)의 성 추문에서 촉발된 고발 캠페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드러낸 의회 권력의 ‘민낯’이다.

"의사당 복도에서 여성 신체 움켜쥔 의원도…" #미 하원 청문회서 '의회 성폭력' 증언 잇따라 #'미투' 동참한 女의원 "적대적인 환경 끝내야" #

14일(현지시간) 미 하원 행정위원회에선 의회 내 성폭력 실태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스피어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이 제출한 ‘의회 내 성희롱 방지 교육 의무화 법안’과 관련해 증언을 듣는 자리였다. 스피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최소 2명의 현역의원이 자신의 보좌관을 성추행했다고 증언했다. 보좌관 및 일반 직원이나 전직 의원까지 합치면 피해 사례가 부지기수라고도 했다.

앞서 그는 과거 의회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수석급 직원으로부터 강제 키스를 당하는 등 자신이 겪었던 성추행을 유튜브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스피어 의원은 “이런 적대적인 환경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면서 이를 끝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나도 당했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성추행 피해 경험을 공개한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나도 당했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성추행 피해 경험을 공개한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할리우드에서 촉발돼 세계 정·관·재계와 언론계까지 강타한 미투 캠페인에서 미 연방의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민주당 원내 서열 5위인 린다 산체스 하원의원(48·캘리포니아 4선)도 의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몇 년 전 동료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현재도 의정활동 중인 현역의원이라고 덧붙였다.

의회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산체스 의원은 성추행 피해를 본 후 어떤 남성 의원과도 단 둘이 있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가까이 가지 않는 등 ‘전략’을 실행 중이다. 그는 초선 여성 의원들에게도 이런 요령을 조언한다고도 밝혔다.

최근 미국에선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의 과거 10대 소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인의 성폭력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정가에선 평소 성추행·성희롱 등으로 악명이 높은 상·하원 의원들의 이름이 담긴 '블랙리스트'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 의회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는 이날 CNN 보도에서도 확인됐다. CNN이 전·현직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 등 의회 근무 경력이 있는 여성 50여명을 대상으로 대면 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이 의회에서 직접 성추행을 당했거나 주변에서 성추행을 당한 사람을 안다고 답했다. 한 전직 하원 보좌관은 "의회 내에 젊은 여성들이 워낙 많다 보니 남성들이 자제력을 보이지 않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CNN은 "상·하원 모두에서 성추행 및 위계에 의한 강압이 만연해 있다는 게 일관된 진술"이라면서 "의회 내 여성들이 미묘하든 명백하든 지속적인 성추행 환경에 노출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청문회 직후 "이 같은 행태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근절할 방안이 필요하다"며 관련 입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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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주 상원은 의원과 보좌진의 성희롱 방지 교육 의무화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헨리 왁스만(민주·캘리포니아) 전 하원의원의 보좌관 출신 인사 주도로 벌어지는 의회 성폭력 근절 서명 운동엔 현재까지 1500여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의회 의사당. [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의회 의사당. [AP=연합뉴스]

◆NBC 부사장 ‘성희롱’ 해고=한편 이날 미 3대 지상파 방송 중 하나인 NBC 뉴스가 자사 뉴스팀의 베테랑이자 출연 섭외 담당 부사장인 매트 짐머맨을 ‘부적절한 행동’을 사유로 해고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NBC 뉴스 모회사인 NBC 유니버설 소속 여성이 짐머맨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회사 인적자원팀에 최근 고발했다. 짐머맨은 투데이쇼 제작에 참여해온 베테랑 방송인으로 2014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NBC에선 NBC 뉴스와 MSNBC 분석가로 활동해온 마크 핼퍼린의이 성희롱 의혹으로 해고된 바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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