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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무역 외 분야에서 ‘이익의 균형’ 맞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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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미 FTA 협상 어떻게 할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놓고 양국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만성 무역 적자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측근들에게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하라”며 본격적인 한·미 FTA 재협상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리셋 코리아 통상분과 제안 #농업 추가 개방도 검토할 만해 #“민감 사안, 신중해야” 반론도 #우리도 실속 반드시 챙길 필요 #미 최혜국 대우해주는 조항 빼야 #한국 측 협상력 강화가 숙제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교감하며 한국과의 통상 협상을 진두지휘 중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한·미 FTA가 한국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불공평한 협정이므로 대폭 개정하거나 아니면 아예 깨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선 한국 측 대표 또한 과감한 결단력으로 널리 알려진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다. 두 사람의 성격상 원만한 타협보다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격렬한 전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두 차례 회의를 한 양측은 지난달 한·미 FTA 개정 협상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렇다면 발효 5년 만에 개정될 운명에 처한 한·미 FTA를 어떻게 고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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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중앙일보·JTBC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통상분과는 무역 외 분야에서 미국 측에 가시적 혜택을 줌으로써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무역수지 적자 폭을 크게 줄일 것을 미국 측이 원하고 있지만 현 한·미 FTA의 틀을 유지하는 한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다.

그러기에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 한국 정부가 수십억 달러 이상의 첨단무기를 사주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FTA 교섭 대표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이익의 균형을 반드시 FTA의 틀 내에서만 맞출 필요는 없다”며 “많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외에도 외교안보 등 큰 틀에서 양국이 깊이 얽혀 있어 단순한 협상가들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최 고문의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 직접 담판도 바람직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

아울러 향후 경우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트럼프와 정치적 담판을 짓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분과위원들 사이에서는 많았다. 무릇 민감한 정치적 사안은 실무자들 간의 협상보다는 최고위층 사이에서 이뤄지는 타협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 부문의 추가 개방 등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주문은 몇몇 개 있지만 그중에서 농업 부문에서의 추가 개방이 현실적으로 사용할 만한 카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극히 예민한 사안이어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지난 10일 개최된 한·미 FTA 공청회는 계란을 던지며 반발하는 농민단체들의 방해로 열린 지 20분 만에 무산됐다.

어쨌거나 농업 부문에서의 추가 개방이 허용될 경우에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농업 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에 대해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농사를 지으면 가격 보존을 통해 소득을 보장해 줬으나 이제는 60세 이상의 노령층에는 경작할 수 있는 농지를 유지하기만 해도 돈을 주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며 스위스 사례를 소개했다. “그래야 쌀 등이 남아도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송 위원의 의견이었다.

의류 원산지 규정도 완화해야

리셋코리아 통상분과 위원

리셋코리아 통상분과 위원

협상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우리만 내줄 게 아니라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컨대 지금의 한·미 FTA 안에는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해준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지만 이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최혜국 대우란 무역 등에서 가장 좋은 혜택을 받는 나라와 같은 대우를 특정 국가에도 베푸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종범 연세대 교수는 “오래전에 협상한 사안이라 지금의 한·미 FTA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걸 양측 모두 잘 모를 것”이라며 “이번 재협상 때 이처럼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최혜국 대우 조항은 꼭 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이 정한 의류 원산지 규정도 지나치게 까다로워 이에 대한 시정도 요구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서로 한두 개 받고 타협 필요

협상 과정에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사안을 들어주는 대신 꼭 필요한 요구는 관철한다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본부장은 “한·미 양측이 서로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있어 완전한 균형을 맞추기는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자동차 등 우리가 절실한 분야만은 반드시 챙긴다는 자세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이어 “미국은 하나도 안 고치는데 우리만 대폭 수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바람직한 방향은 양측이 서로 가장 원하는 한두 가지를 주고받으면서 타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TA 폐기 카드 활용은 곤란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나친 요구를 하면 우리가 먼저 나서 한·미 FTA를 깨자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필요하면 FTA 폐기를 협상 카드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전략에 대해 통상분과 위원들은 대체로 동의하지 않았다. FTA 폐기 시 수출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게 돼 국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이에 대해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국과의 무역으로 재미를 본 미국 쇠고기 등의 수출업자들은 FTA 폐기를 반대하지만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없어져도 미국의 손해가 절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이 나서 한·미 FTA 폐기를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터라 한국으로서는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 “현재 일본과 미국 주도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용하는 새로운 경제협력체를 구상 중이어서 한국도 이 논의에 참여할 경우 한·미 FTA 외에도 별도의 옵션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선택지를 많이 가질수록 대미 협상력은 향상되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남정호 논설위원, 이진영 인턴기자 nam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