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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협상 시작되면 최대 쟁점은 자동차·철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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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문은 무엇인가. 미국은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과의 무역 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 불공평한 협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1년 132억 달러였던 적자는 2016년 276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미국, 농업 추가 개방 요구할 듯 #한국도 ISD 축소 등 실속 차려야

따라서 미국은 가장 큰 적자를 내는 자동차 및 관련 부품, 그리고 철강 부문에서의 개정을 먼저 요구할 게 틀림없다. 자동차 관련 부문은 미국 측 적자의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종전 미국산 수입차에 대해 부과했던 8%의 한국 관세는 2012년 3월 한·미 FTA 발효에 맞춰 4%로 내렸다. 2016년 1월부터는 아예 없어졌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차에 대한 관세도 없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2015년까지 2.5%의 관세를 부과하다 한·미 FTA에 따라 지난해부터 무관세로 돌아섰다. 결국 지난해부터는 양측 모두 무관세여서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국 측은 방향지시등 관련 규제 등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어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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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역시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품목이다. 2011년 4.9%였던 한국산 철강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에는 8.0%로 뛴 까닭이다. 이렇듯 점유율이 늘어난 건 중국산이 한국을 통해 우회 수출됐기 때문으로 미국 측은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철강 부문의 대미 흑자는 2.5배나 늘어나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철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핵심 산업이어서 정치적으로도 극히 민감한 품목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자동차·철강에서의 적자 규모를 줄이길 바란다. 하지만 문제는 한·미 FTA를 고쳐도 사정이 크게 나아질 가능성은 작다는 거다.

이 때문에 미국 측은 자신들이 경쟁력 있는 농업 부문에서의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8월 열린 한·미 FTA 1차 특별 공동위원회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은 협정 발효 후 15년에 걸쳐 없애기로 한 농산물 관세를 당장 없애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농업은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해 이 부문을 대폭 개방하느니 아예 한·미 FTA를 깨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적잖은 형편이다.

한편 이들 세 부문이 관련 협정을 고칠 분야라면 이미 맺어진 조항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미국 측이 주문할 내용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게 법률시장이다. 한·미 FTA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법률시장은 완전히 개방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개정된 관련 규정에 따라 외국계 로펌이 국내 업체와 합작 법인을 만들 경우 지분율과 의결권은 최대 49%로 제한된다. 미국 측이 “법률시장 개방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이 밖에 스크린쿼터제 및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허용 문제 등도 미국 측 요구 때문에 중요한 사안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측이 개정을 요구할 사안도 있다. 한·미 FTA를 맺을 때 논란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측은 국내법으로 다스려야 할 외국 기업 관련 환경·노동 분쟁까지 국제 중재로 해결하도록 한·미 FTA에 못 박아 논란을 낳고 있다. 아울러 한·미 FTA 발효 이후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는 지식재산권 및 여행서비스 분야에서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