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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감사 부서 인사·예산권 장악 … 감사 독립 갈 길 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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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업이 불·탈법을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사가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감사의 자격과 선임에 대한 규제도 촘촘해졌다. 지배구조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모든 금융회사는 감사위원회 또는 감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감사 선임·운영 규제 강화됐으나 #CEO의 감사 추천으로 독립 저해 #감사 독립 위해 분리 선임 확대해야

금융감독원이 117개 금융회사를 전수 조사해 보니 형식적으로는 모두가 법을 잘 지키고 있었다. 73.5%에 달하는 86개사가 감사위원회를 뒀고, 27개사(23.1%)는 상근감사, 4개사(3.4%)는 비상근감사를 두고 있었다.

감사위원회는 평균 3.2명의 이사로 구성돼 연평균 7회가량 위원회를 개최했다.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토록 하는 규정도 모두 준수했다.

하지만 그 선임 절차나 운영에선 여전히 CEO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감사를 선임토록 하고 있는 76개사 가운데 62개사가 사내이사를 위원회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CEO가 직접 임추위 구성원인 경우도 53개사(69.7%)에 이르렀다. 감사 선임 과정부터 CEO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사외이사로만 임추위를 구성해 감사 선임의 독립성을 형식적으로라도 보장하는 곳은 7개사(9.2%)에 불과했다. 또 사외이사 감사위원의 임기는 2년 이내가 86.4%로 짧았다.

감사 지원 부서에 대한 인사권과 예산권도 대부분 CEO가 행사하고 있다. 감사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조사 결과 지원 부서장 임면권을 CEO가 행사하는 경우가 87%에 달했고 감사위원회가 갖고 있는 경우는 13%에 불과했다. 감사위원회가 예산권을 행사하는 비율은 9.1%로 더 적었다. 한 증권사 감사는 “감사실이 형식상 감사 아래 있어도 실제론 인사와 예산을 쥐고 있는 CEO의 의중이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대상 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은 내부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회가 아닌 경영진에 먼저 보고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 감사 기능의 본질적 개선을 위해선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사외이사 1명만 적용하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 의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 지원 조직에 대한 상근감사위원의 인사·예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감사가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감사위원회 구성과 안건명, 찬반 여부만 공개하고 있는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의 공시 내용을 주요 발언 내용과 내부 감사 활동 내역, 자체 조치 내역 등으로 확대해 감사 기능에 대한 외부 평가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