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뚫은 토종 소프트웨어 업체, "데이터 실시간 장악 없이는 모두가 하청업체로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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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를 보세요.”
지난달 서울 여의도 N3N의 사무실. 남영삼(50) 대표가 대형 스크린에 디지털 지도를 띄웠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리 풍경이었다. 남 대표는 거리를 확대해 한 건물을 클릭했다. 건물의 층별 구조도가 3차원으로 지도 위에 떠올랐다. 특정 층을 클릭하자 그 층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10여개의 CCTV화면이 동시에 돌아갔다. “실시간 영상입니다. 이 동영상을 한꺼번에 보려면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할까요. 사용자가 당장 보려고 하는 장면만, 최적화해 전송하는 게 우리의 기술입니다.”

데이터 시각화 솔루션, N3N 남영삼 대표 인터뷰 #시스코, AT&T에 스마트시티 운영 SW 공급 계약 #"데이터 장악 중요성 모르는 한국 제조업체 걱정"

이른바 픽셀 온 디맨드(Pixel On Demand), 전체 영상에서 사용자가 보려는 화소만 골라내 전송하는 N3N의 핵심 기술이다. N3N은 이 기술을 내세워 글로벌 정보통신(IT) 대기업에 스마트시티ㆍ스마트팩토리 운영 소프트웨어(SW)를 공급하는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인도에 대규모 스마트시티 건설 사업을 벌이는 시스코, 미국 300여개 도시에 스마트 인프라를 구축하는 통신사 AT&T가 대표적이다.

데이터 시각화 솔루션 업체 N3N 남영삼 대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최승식 기자

데이터 시각화 솔루션 업체 N3N 남영삼 대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최승식 기자

N3N은 이미 2014년 시스코 본사의 투자를 유치했고, 최근 하나금융그룹ㆍGS칼텍스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받았다. 남 대표는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통해 세계 시장에 성장을 더욱 가속화 하려한다”며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실시간 데이터 장악이고, 이는 우리 회사의 기회”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선 소프트웨어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기업이 드문데.
“드문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해외에 수출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시스코와 AT&T, IBM과 오라클에도 우리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시스코와 AT&T, 오라클 등을 뚫은 기술은.
“스마트시티나 스마트팩토리 모두 핵심은 실시간 데이터다.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를 통해 서비스를 창출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끊김 없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먼저다. 공간을 구조화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기술이 그것이다.”

데이터 시각화 솔루션 업체 N3N 남영삼 대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최승식 기자

데이터 시각화 솔루션 업체 N3N 남영삼 대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최승식 기자

-제조업 중심의 한국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은 우리 회사에 큰 기회이지만,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제품을 잘 만드는 것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고객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기업은 모두 플랫폼 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아직 이를 이해하지 못한 회사가 많은 것 같다.”

-모든 기업이 그런 플랫폼을 구축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화장품 회사, 정유 회사는 고객 소비 생활의 일부에 관여할 뿐인데, 아마존처럼 고객 데이터를 장악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제품을 파는 걸 넘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숙이 관여하면 된다. 미국은 이 싸움에서 이미 결론이 났다. 누구도 아마존을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아마존처럼 강력하게 고객의 거래 데이터를 장악한 플랫폼이 아직 없어서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고객의 금융 및 거래 데이터를 장악하기 위해 뛰어든 것도 이런 목적에서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데 왜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은 이렇게 없을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IT 강국이 아니라 통신망 강국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건 대기업 그룹의 SI(시스템통합) 자회사들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기업 그룹이 SI에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영을 맡기며 독립된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주종 관계를 형성했다. 먹고 살 만큼만 돈을 주고, 개발한 기술에 대한 소유권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인재가 몰리지 않고, 거래소 시총 상위에 소프트웨어 기업이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아직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울 여지가 있을까.
“늦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똑똑해서다. 어깨가 무겁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미국 새너제이(San Jose) 사무실을 새너제이 임시정부라고 부른다. 그만큼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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