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IT 거물들 잇따라 “기본소득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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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왼쪽부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샘 알트먼 Y콤비네이터 대표.

왼쪽부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샘 알트먼 Y콤비네이터 대표.

전통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은 최고의 일자리를 제공해 왔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면 많은 급여와 복지 혜택에, 쑥쑥 크는 회사의 이익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회사에서 먹고 자며 열정을 불태운 젊은이들이 스톡옵션과 지분 배분으로 벼락부자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부족한 소득·안전망 보완 위해 #“기술 진보가 자본주의 약화” 역설

하지만 최근 일부 IT 기업에서는 이런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필요한 노동력을 거래하는 ‘긱 이코노미’ 업태가 특히 그렇다. 공유 차량 호출, 음식 배달, 청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단기 근로자들이 대규모로 투입되는데 회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익 공유는커녕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다.

긱 이코노미 근로자들은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 또는 자영업자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최저임금 또는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수는 회사로부터 받지만 건강보험·휴가·퇴직금도 없다. 모니카 스토니에 워싱턴주 하원의원은 경제전문지 포춘 기고에서 “육아 또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 긱 이코노미를 선택한 근로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해 집 장만이나 노후 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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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누구보다 제대로 인식하는 곳은 실리콘밸리다. IT 창업자들은 긱 이코노미, 로봇을 통한 자동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기술 발전이 산업 지형과 근로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는 데 주목했다. 열악해지는 일자리를 보완하는 장치로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UBI)을 긱 이코노미의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UBI는 정부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근로 여부, 재산 규모, 연령 등을 따지지 않는다.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21세기 사회적 백신’으로도 불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결국 보편적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 5월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안전장치(cushion)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 벤처캐피털 안드레센 호로위츠의 마크 안드레센 대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Y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먼 대표도 같은 의견이다.

지난해 5월 알트먼 대표는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파일럿 실험을 직접 해보겠다고 발표했다. 비영리 연구소를 통해 지난해 가을부터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가정 100곳에 기본소득을 나눠주고 있다. 한 가정이 월 1000~2000달러(약 110만~220만원)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 받는다. 엘리자베스 로즈 연구책임자는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고, 일자리가 덜 안전해지면서 겨우 먹고살 만큼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며 “기존 사회안전망의 대안을 찾는 게 연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은 “제조업과 유통업에 자동화 시설이 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긱 이코노미로 이동해 낮은 소득을 올리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며 “기술의 진보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기반을 약화하고 삶의 질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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