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공모 인정돼” 대법, 원심 파기 … 주민 셋 형량 늘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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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5월 전남 신안군 섬마을에서 학부모 3명이 초등학교 여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했다.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공모 혐의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특수강간죄로 가중처벌 불가피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6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민 박모(50)씨와 김모(39)씨, 이모(34)씨에게 징역 7~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공모·합동 관계를 부인하지만 증거들에 의해 확인되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관찰·분석해 볼 때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특수준강간미수)에 대해 공동공모정범, 합동범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씨 등은 지난해 5월 21일 저녁 식당에서 만난 이 섬의 초등학교 교사 A씨에게 술을 강권한 뒤 만취하자 관사로 데려다 준다며 따라가 차례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처음에 각자 한 차례씩 성폭행하려다 A씨의 저항으로 실패하자 자정이 지난 뒤 다시 관사로 찾아가 A씨가 잠든 틈을 타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범행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이 학부모라는 지위를 악용해 범행을 공모했다며 징역 17~25년을 구형했다.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공모관계 인정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2차 범행의 공모관계는 인정했지만 1차 미수 범행은 각자의 단독범행으로 판단했다. 박씨는 징역 12년, 이씨는 징역 13년, 김씨는 징역 18년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2심도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피해자와 합의하고, 초범이란 점 등을 이유로 들어 형량을 각각 징역 7년과 8년, 10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범인 중 한 명인 김씨가 2007년 대전의 한 원룸에 사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형량의 적정성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었다.

조국 민정수석도 지난해 6월 감형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조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한 법규와 실무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술을 먹어 판단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감형되는 경향은 없어져야 한다. 범행 의도를 갖고 술을 먹은 것은 오히려 가중처벌 사유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법원의 파기 결정으로 가해자들의 형량은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의 환송 취지에 따라 1차 미수 범행도 공모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특례법에 따르면 2명 이상이 합동해 범행을 저지르는 ‘특수(준)강간죄’의 형량은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으로 살인죄와 맞먹는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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