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거주하는 A 씨(68)는 청각장애 2급인 부인과 살고 있다. 고령·장애 등의 이유로 두 사람 모두 돈을 벌기 어려워 기초연금·장애인연금만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이 돈으로는 생활이 어렵자 A 씨는 지난해 10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주민센터 조사 결과 부양의무자인 노모(기초연금 수급)의 재산이 기준을 넘겨 수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노인·중증장애인 가구에 기준 완화돼 #저소득 4만1000가구 혜택 받을 전망 #부양의무자로 수급 못 받는 인원 93만 #정부, 4단계로 부양의무제 완화할 계획
앞으로는 A 씨처럼 저소득 노인 자녀가 노인 부모를 부양하는 짐이 줄어들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1일부터 기초생활 수급자와 부양의무자 양쪽 모두 노인·중증장애인인 가구에 적용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다고 밝혔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4만1000가구가 추가로 기초수급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노인의 소득 인정액(재산의 소득환산액 포함)이 일정 기준(4인 가구 월 513만원)을 넘으면 부모나 중증장애인(1~3급) 자녀가 빈곤에 허덕여도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가족 간 부양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소득 하위 70% 이하에 속해 기초연금·장애인연금을 받는다면 부양의무 대상에서 빠진다. 부모 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자녀 등의 소득 인정액만 따져서 기준(1인 가구 49만5879원 미만)에 해당하면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초 기초수급 대상에서 빠졌던 A 씨도 다음 달부터 생계·주거 급여를 합쳐 60만원을 받고 의료급여도 적용받게 된다.
기준 완화로 혜택을 보는 대표적 가구 유형은 '노인 자녀-노인 부모'다. 65세를 넘긴 노인이 80~90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짐을 국가가 덜어주게 된다. 중증장애인 가구도 숨통이 트인다. 자녀와 부모 양쪽 다 중증장애인인 가정이나 중증장애인 자녀를 둔 노인 가정이 혜택을 받게 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복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올해 공개된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재산은 기준을 충족하지만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 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93만명(63만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4단계로 완화해나갈 계획이다. 다음 달 노인·중증장애인 가구에 이어 내년 10월엔 주거 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제 적용이 폐지돼 90만명(58만 가구)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또한 2019년 1월엔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 장애인이 있을 경우, 2022년 1월엔 노인이 있으면 부양의무제를 적용하지 않게 된다. 다만 기준이 완전히 폐지되는 건 아니다. 자녀가 노인이 아니거나 중증장애인이 없는 일반 가정은 부양 의무가 유지된다.
기초수급을 받으려는 사람은 주민등록 주소지의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소득·재산 조사 등을 거쳐 지원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보건복지콜센터(☏129), 복지로 홈페이지(www.bokjiro.go.kr) 등을 이용하면 된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