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논란 사과하지 않은 靑…공약 파기-세금 낭비 모두 침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중단됐던 신고리원전 5ㆍ6호기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일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권고 이틀 만이었다.

하지만 이날 서면으로 발표된 1800자 분량의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에는 ‘사과’나 ‘유감’과 같은 표현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신고리 5ㆍ6호기의 공사 중단’이 적시돼 있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주의는 토론할 권리를 가지고 결과에 승복할 때 완성된다”며 “공사 중단이라는 저의 공약을 지지해주신 국민들께서도 공론화위의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만 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그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89일 동안 활동한 공론화위에 투입된 예산(46억원)을 제외하고도 건설 중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협력사에 줘야 할 돈이 약 1000억원(한국수력원자력 추산)에 달하는데도 정책적 혼선을 초래한 부분에 대한 사과와 유감 표명 역시 없었다.

문 대통령은 대신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줬다”거나 “통합과 상생의 정신을 보여줬다”며 공론화위의 활동과 결과에 대한 높은 평가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中 탈원전 관련 부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中 탈원전 관련 부분

이같은 청와대 기조는 지난 20일 공론화위 발표 직후에도 드러났다. 청와대는 “공론화위의 뜻을 존중하다”거나 “공론화위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주신 시민참여단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공식 입장만 냈다.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감동적이었다”는 메시지가 중심이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6월 항쟁과 촛불에 빗대 “내 나라 대한민국과 그 위대한 국민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은 날”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던 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졸속 원전 중단에 대한 정직한 사과가 대통령의 도리”라며 “공론화위로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켜 놓고, 그것을 숙의민주주의라는 궤변으로 덮으려 하는 건 참으로 실망스러운 입장 발표”라고 말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매몰시켜놓고 사과 한 마디 없이 그저 ‘뜻 깊은 과정’이라고만 밝힌 점은 실망스럽다”며 “사과 없이 무책임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공론화위가 당초 권한에 없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권고까지 한 것에 대한 월권(越權) 논란도 이어졌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공론화위가 신고리 5ㆍ6호기 생사 운명만 결정할 것이지 왜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결론으로 확대하느냐”며 “국민 어느 누구도 위원회에 그런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탈원전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이 공론화위가 조사해서 결과낸 걸 근거로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탈원전이라는) 이 정부의 기본 철학과 가치를 갖고 대선을 치렀고 선택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