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마켓 랭킹] 1등은 카스, 그런데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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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하이트-맥스-클라우드 순”

0B, 하이트에 빼앗긴 1위 #'양자'로 들인 카스가 되찾아 #외국 맥주 많이 마시지만 #물량은 여전히 '카스처럼' #빠르게 변하는 입맛 취향 #시장 지키기 어려울 수도

1994년 출시할 당시 `카스` 병맥주 포장. 진로 쿠어스 제조 표시가 보인다.       [중앙DB]

1994년 출시할 당시 `카스` 병맥주 포장. 진로 쿠어스 제조 표시가 보인다. [중앙DB]

국내에서 어떤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지를 물으시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맥주 제조업체, 유통업체 관계자들의 의견도 대부분 일치합니다. OB맥주의 카스, 하이트진로의 하이트, 하이트진로의 맥스,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가 전체 맥주 시장의 9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10% 정도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맥주가 차지한다고 하네요.

1993년 출시 당시 하이트 병맥주 포장.                [중앙DB]

1993년 출시 당시 하이트 병맥주 포장. [중앙DB]

암반 천연수를 강조한 1993년 하이트 병맥주 포장                [중앙 DB]

암반 천연수를 강조한 1993년 하이트 병맥주 포장 [중앙 DB]

“난 이제 국산 맥주 안 먹는데”라며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집에서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기 쉬워지고 가격도 저렴해진 세계 맥주를 기호대로 골라 먹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가격과 맛이 무난한 카스나 하이트, 클라우드를 마시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순위,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국산 술 점유율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집계할 수 있습니다. 매월 따박따박 주세를 내고 관련 법규가 많은 데다 업체도 몇 군데 없어 출고량과 판매량 파악이 단순한 편입니다. 이 때문에 2011년 4월까지는 매월 정확한 통계가 나와 피 말리는 맥주 전쟁을 부추기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기사도 가능했죠.

하이트진로의 맥스       [중앙DB]

하이트진로의 맥스 [중앙DB]

“소비가 가장 많이 늘어난 맥주는 모두 7205만5000상자(한 상자=500mL 20병)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6881만5000상자보다 4.7% 많다. 업체별로 하이트맥주가 4219만3000상자를 팔아 시장점유율 58.6%를 기록했다.  OB맥주는 2986만2000상자를 판매했다. (중략) OB맥주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7.2% 늘었다. ” (중앙일보 2008년 6월 25일자 경제 3면)

상황은 판매량 집계를 하던 한국주류산업협회가 ‘킹스맨’ 뺨치는 비밀주의로 돌아서면서 변했습니다. 2011년 이후 협회는 점유율을 비공개로 하고 현재는 홈페이지 문도 닫아 버렸습니다. 협회 관계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조차 꺼려 사무실 전화 번호도 노출하지 않는 일종의 비밀조직이 되가고 있습니다. 또 회원사나 소비자를 위해 하던 대부분의 활동을 접었습니다. 주류 관련 고시가 바뀌면 통보하는 정도라고 합니니다. 공공연하게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2014년 출시된 롯데칠성음료 클라우드  [중앙 DB]

2014년 출시된 롯데칠성음료 클라우드 [중앙 DB]

이런 결정은 특정 자료를 공개하고 나면 쏟아지는 항의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 실은 이마저 협회는 정확히 얘기하지 않습니다만. 주식이 거래소에 상장된 주류사의 경우 점유율 공개 때마다 주가가 요동치고 주주들이 전화를 직접 걸어 공표 수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버티지 못했다는 게 업계 관측입니다.

협회가 두 손 들 정도로 주류시장은 지난 20여년간 총성없는 전쟁터였습니다. 전쟁의 서막은 1993년 첫 선을 보인 하이트의 등장이었습니다. 만년 2등 브랜드 ‘크라운맥주’를 제조해 온 조선맥주의 만루역전 홈런이었던 하이트는 3년 만에 40년간 이어온 OB맥주의 아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오죽하면 회사 이름을 조선맥주에서 아예 하이트로 바꾸었겠습니까(이후 진로를 인수하면서 하이트진로가 됩니다).

당시 하이트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국내 최초 비열처리 맥주’ ‘암반 천연수’ ‘100% 보리로 제조’ ‘맥주병에 온도계 마크 부착’ 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세워 맥주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광고도 감각적이고 관련 마케팅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성공적이었죠. OB의 페놀 사건을 상기하는 ‘암반 천연수’ 마케팅은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96년 8월 하이트는 시장점유율 50%를 넘어 축배를 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06년까지 점유율은 60%로 유지했습니다. 24년 국내 최초의 맥주회사로 출발하고도 만년 2등이었던 설움을 완전히 떨쳐낸 것이죠.

OB맥주는 충격에 빠집니다. 광복이후 맥주 시장을 꽉 잡아온 화려한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점유율을 잃었죠. 몇 번의 실패(OB 아이스 등이 있었습니다)를 하고 결국 자체 브랜드로는 다시는 왕좌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고든 램지 카스 광고

하이트 맥주 모델 송중기
맥스 광고 모델 하정우
클라우드 맥주 모델 설현

반격은 99년 카스(94년 진로가 야심차게 출시한 맥주입니다)를 인수하면서 시작합니다. OB맥주는 두산에서 분리된 이후 별도 법인으로 있다, 인터브루- 인베브-AB인베브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고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미국계 사모펀드 KKR 등)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브랜드가 확실한 카스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했다. 결과적으로는 오리지널 OB맥주보다는 굴러들어온 카스가 현재 이 회사를 지탱하게 된 것이죠.

카스의 집권은 언제까지 갈까요. 전망은 엇갈립니다. 세계 맥주, 수제 맥주의 열품이 무섭다고 하지만, 가정에서의 얘기입니다. 집에서는 기껏해야 맥주 한 두 캔이지만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여전히 국산 맥주를 짝으로 마시기 때문에 점유율이 쉽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그러나 ‘부어라 마셔라’로 요약되는 회식이 대폭 줄어들고 있어 섞어 마시기 좋은(맛으로 알려진) 국산 맥주가 시장을 지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연 이제 20대 중반이 된 카스나 하이트가 세계 유수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수 십년 수 백년 더 갈 수 있을까요.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죠. 국산 맥주 특유의 가볍고 시원한 맛도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을 수 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아직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일본맥주문화연구회 등이 펴낸 『맥주도감』을 비롯해 세계 맥주를 소개한 여러 책을 보면, 한국 맥주는 끼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이런 책에 중국 칭다오나 태국의 싱하는 꼭 포함돼 있더라고요. 90년대 하이트와 카스의 대결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한번쯤 더 있어야 맥주 맛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전영선 기자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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