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시작해 어느새 빚이 수천” 불법 도박 10대 3년 새 3배 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게임을 하고있는 10대 청소년. [중앙포토]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게임을 하고있는 10대 청소년. [중앙포토]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본 도박사이트 광고가 화근이었다. '신규 2만 포인트 지급. 검증된 사이트이니 믿고 이용하시면 됩니다'라고 홍보하는 사이트에는 다양한 게임들이 있었다. 사다리가 왼쪽으로 내려올지 오른쪽으로 내려올지, 스포츠 경기에서 어떤 팀이 이길지 등등…. 잘만 맞히면 대박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박을 시작하니 돈은 잃을 때가 더 많았다. 본전을 찾기 위해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온갖 핑계를 대가며 부모님께 돈을 타내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 또 잃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있지도 않은 물건을 팔아 돈을 구했다. 또 잃었다. 중고품 거래 사기 혐의로 경찰에 입건까지 됐다. 도박으로 날린 돈은 어느새 1500만원이 됐다.”

최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로 걸려온 A군(16)의 상담 전화 내용 중 일부다. 불법 인터넷 도박 문제로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19세 이하 청소년들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 8명에서 지난해에는 180명이 센터를 찾았다. 올해도 지난 8월까지 99명의 청소년들이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ii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iinhwan@joongang.co.kr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경찰청·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형사입건된 10대 청소년들 숫자는 2014년 110명에서 지난해 347명으로 3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9월 전북 익산경찰서는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가입해 약 3억원을 입금하고 게임을 한 청소년 5명을 검거했다.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대부분 '반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도박 게임을 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게임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2차 범죄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강원 춘천경찰서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유모차를 구한다'는 피해자의 글을 보고 연락해 물품 대금을 입금받고 물품을 보내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 61명으로부터 740만원 상당을 가로챈 10대 청소년을 검거했다. 지난 4월 부산에서는 온라인에 스마트폰·패딩 등을 판매한다는 허위 글을 올려 1200여 만원을 받아낸 청소년들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이 경찰에 진술한 범행 동기는 생활비 및 도박자금 마련이었다.

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 광고. [인터넷 캡처]

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 광고. [인터넷 캡처]

불법 도박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은 도박 중독으로 인한 우울증과 채무·학업 부적응·관계 단절 등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도박 게임을 시작한 B군(18)은 "처음에 1만~2만원으로 200만원을 번 적이 있다. '대박'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늘 도박 충동이 생겼다. 주위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계속 게임을 해 지금 빚이 1400만원이다"고 털어놨다. 2년 전 불법 사다리 게임 등에 빠져 1600만원의 빚을 진 C군(17)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이 심해져 결국 자퇴했다.

도박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청소년 수도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도박중독으로 외래진료를 받은 청소년이 2013년 13명에서 지난해 4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박경미 의원은 "도박 노출 연령이 낮을수록 청소년기 이후 심각한 도박중독으로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일선 학교에서부터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