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고리 공론조사 찬반 박빙 갈릴까 꿈에도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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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론조사라는 수단이 극한 대립과 투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토론과 통합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라는 기대를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론조사라는 수단이 극한 대립과 투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토론과 통합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라는 기대를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황금 연휴의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 있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사무실에서는 마라톤 회의가 열렸다. 15일로 다가온 최종 공론조사 결과에 대비한 회의였다. 유의미한 찬반의 편차를 얼마로 볼지, 박빙이라면 권고안을 어떻게 낼지에 대한 최종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위원들(총 8인)은 갑론을박을 거듭했다. 회의장에서 잠시 나와 전화를 받은 김지형(59·전 대법관) 위원장은 “찬반이 박빙으로 갈려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꿈에 나올 정도”라고 심경을 밝혔다. 오랜 회의 때문인지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인터뷰 #시민참여단 478명 한 달 학습·토론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15일 조사결과, 여론과 간극 클 수도 #갈등 최소화 위한 대안도 권고할 것

7월 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는 478명의 시민참여단의 찬반 의견(공론)을 바탕으로 정부에 권고안을 내게 된다. 시민참여단은 지역·성별·연령 등이 통계적으로 대표된 시민 500명 중 지난달 16일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사람들로 확정됐다. 한 달 가까이 학습 과정을 거친 이들이 2박3일의 합숙토론 후 임하는 15일 공론조사에서 사실상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과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정해진다.

최종 결정은 정부의 몫이지만 ‘공사 중단’ 또는 ‘공사 재개’ 중 하나로 참여단의 의견이 집중되면 정부가 다른 길을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빙’의 공론은 김 위원장이 시작부터 걱정해 온 시나리오다. 그 경우 강한 톤의 권고안을 내면 “위원회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고, 아무런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공론조사 무용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공론화위원장은 이에 따른 곤혹스러움을 떠안아야 하는 자리다. 김 위원장은 “속절없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게 분명했지만 공론조사 정착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후배 변호사의 조언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진행된 두 시간여의 인터뷰와 전화통화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공론화위는 ‘들러리’라는 혹평이 있다.
“공론화 절차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면 쉽게 단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수의 힘에 의해 진행되는 정치적 의사결정과는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시민대표들이 공부하고 토론하며 다수를 형성해 가는 ‘숙의(熟議) 민주주의’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민주주의의 진화된 형태다.”
대의민주주의와 충돌한다거나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론조사는 대의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수가 결정하고 소수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야기되는 투쟁의 방식에서 ‘숙의’ 방식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특히 이번 조사의 대상은 의회의 입법 사안과는 다른 정부 정책이다. 대중 여론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 공론조사는 다르다. 숙의 과정에서 참여단은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학습하고 토론한다.”
참여단의 판단과 여론의 간극이 크면 사회 갈등 예방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텐데.
“맞다. 공론조사에 따른 정부의 결정을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전국 순회 토론회, TV토론회 등을 병행했다.”
절박한 이해당사자들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데.
“배심재판에서 원고·피고가 평결에 참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참여단의 판단을 이해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어떤 결론이 나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까지 권고안에 넣으려고 한다. 공론조사가 새로운 갈등의 재생산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 위원장은 “공론조사의 1차 목표는 ‘끝까지 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기회가 공론조사라는 수단이 우리 사회가 극한 대립과 투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토론과 통합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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