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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헌재소장 대행체제’는 민의 무시한 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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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헌법재판관 전원이 권한대행직 수행에 동의했다”는 게 어제 청와대가 한 설명이다. 김 권한대행이 퇴임하는 내년 9월까지 새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권한대행은 5월 소장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9월 11일 국회 인준안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물을 ‘실질적 헌재소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인데 편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청와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현재 8명의 재판관 중 소장을 지명하거나 헌재소장 겸 재판관 후보자를 새로 지명하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의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해명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헌법 최고기관의 수장(首長)을 1년 가까이 대행으로 가겠다는 발상은 ‘꼼수’에 불과하다. 헌재는 ‘소장 권한대행 체제’와 ‘8인 재판관 체제’를 9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는 그 파행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하지만 소장 인준안 부결이나 ‘주식 대박 논란’으로 사퇴한 이유정 재판관 후보자 지명 과정을 돌이켜 보면 청와대의 안이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권한대행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후보자로 발표했지만 낙마했다. 국회 부결 직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무책임의 극치’ ‘국민의 기대 배반’이라며 맹비난했다. 그런 감정적 앙금이 대행체제 강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헌재소장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다음의 국가 의전 서열 4위 자리다. 법치주의의 보루로 불리는 헌재가 그 법치를 에둘러 가는 모습은 비정상이다. 국회를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인정한다면 그 뜻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새 헌재소장을 찾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