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트집에 관대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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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벌어진 남북한 간의 갈등, 그것을 처리하는 양측의 방식은 정말 유감스럽다. 그것은 또 동족 간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우선 일부 시민단체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나 이에 대한 북측 기자들의 폭력 저지는 모두 부적절한 행위였다. 북측의 철수 고려라는 입장표명에 따라 대회조직위원장이 유감을 밝혔음에도 북측이 그제 다시 사소하고 우발적인 사안을 갖고 재차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 것은 지나친 행위였다.

응원단 숙소의 문제는 먼저 우리 측에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순리다. 한 기독교 전도사의 반공선전행위도 전국순회 중 북측의 연습 중인 선수들과 우발적으로 조우해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기분이 좋을 리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남쪽 사회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그래서 민족화해의 장을 마련하려는 자세를 진정으로 가졌다면 두번씩이나 그런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북쪽의 여성응원단이 보여준 생동감에 푸근한 마음을 가졌던 많은 시민조차 "그러면 그렇지" "간다면 할 수 없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번 U대회가 북한이 얼마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인가를 새삼 확인하는 계기만 만들었다면 북측의 참가 목적과도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측의 집요한 트집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자세도 아무리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 해도 석연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언론이 사태를 남북 자존심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가 사태를 모면하고 북측을 달래기에만 급급해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일일이 받아들여 사과하는 것만이 능사이고 정도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으며, 또 이런 사회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북한이 이런 남측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한에 자기 입장만 강요한다면 그나마 남쪽에 남아 있는 북에 대한 애정과 미련은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