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이즈 관리체계 재정비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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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을 수혈해 60대 환자 2명이 감염된 데 이어 문제의 혈액이 의약품 원료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진 것은 충격적이다.

한 제약회사는 혈장을 제공받아 알부민 3천여병을 제조해 창고에 보관 중에, 또 다른 회사는 면역글로블린을 제조하던 과정에서 지난달 각각 국립보건원으로부터 혈액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통보받고 전량 폐기했다.

문제는 국립보건원이 헌혈자의 혈액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최종 판명된 것을 지난 5월에 알았지만 무려 두달이 지나서야 제약회사에 통보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약이 판매돼 환자들이 복용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보건원에서는 오염된 혈장의 바이러스를 멸균시키는 공정을 거치므로 안전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16명의 에이즈 감염자들은 지난 2월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으로 만든 혈우병 치료제를 사용해 감염됐다"며 제약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그래서 보건원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게다가 감염된 두 사람과 헌혈자의 개인신상이 담긴 대외비 공문이 유출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공문은 지난 14일 보건원이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보낸 것이라니 결국 두 기관 중 한 곳에서 새나간 셈이다. 이는 수혈에 의한 감염, 감염혈액을 사용한 약품 제조 못지않게 심각한 사건이다. 인권침해에 대한 무감각과 윤리의식 실종이 그대로 노출됐다.

국내 에이즈 감염자는 이미 2천명을 넘어섰고 매일 1.4명꼴로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의료당국의 에이즈 관리체계는 낙후돼 있어 전면 수술이 불가피하다.

먼저 수혈에 의한 감염을 줄이기 위해 감염혈액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간을 현재의 3~4주에서 2~3주로 당길 수 있는 핵산증폭검사법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유럽연합처럼 제약회사가 혈장을 제조에 사용하기 전 3~6개월간 저장하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에이즈 관리체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기 위한 종합대책 수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