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부자는 ‘쓰는 것보다 더 버는 사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

[중앙포토]

[중앙포토]

부자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져야 부자라 할 수 있을까. 현금 10억원에 20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졌다면 부자일까. 도무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한데 필자는 부자다. 현금 보유는커녕 몇천만원의 빚을 지고, 수도권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데도 그렇다. 나름 대학생 때 세웠던 ‘치부’의 기준을 달성했기에 하는 흰소리다.

반백수 돼보니 부자 기준 달라져 #가끔 후배 만나면 밥 사줄 수 있고 #요구르트 뚜껑 안 핥을 정도면 돼

대학 졸업반 때 갑작스러운 장 출혈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더랬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6인실에 누워 하는 생각이라곤 하루라도 빨리 퇴원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노심초사하는 부모님 뵙기가 면구스러워서였다. 장 출혈이라는데 딱히 치료랄 것도 없고, 수혈하고 굶으면서 장을 도포하는 정도여서 더 그랬다. 그때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인실에서 다른 걱정 않고 아프기에만 ‘열중’할 정도만 돈을 벌어야겠다고. 그게 당시 필자가 생각하는 부의 기준이었다. 결국 그 기준에 다다랐으니 필자는 금전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이게 젊었을 때 생각한 부자라면 반백수인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주변 친지들의 애경사에 나름 성의를 표시할 정도, 가끔 만나는 후배들에게 점심이라도 살 정도,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면 커피라도 살 정도면 살 만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 소박한 기준은 책에서 만났다. 부자의 정의 딱 한 줄. ‘쓰는 것보다 더 버는 사람’. 이건 스톡이니 플로우니 하는 개념으로 따질 게 아니다. 어디에, 얼마나 쓰느냐가 문제라고 대거리할 것도 아니다. ‘마음이 부자라야 진정한 부자’라는 인문학적 표현이니 말이다. 연봉 몇억원이라도 부족하다며 쫓기는 이가 있을 수 있고, 월 100만원을 벌어도 넉넉한 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연전에 대학생 상대로 강의할 때 부자의 정의를, 한 줄로 기발하게 내려보라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답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요구르트 뚜껑을 핥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 그 기준에 따르자면 필자는 몇십 배 부자인지 모른다. 물론 속으로는 ‘아깝다’고 여기면서 체면 때문에 핥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