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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양승태, 평생법관제 성과 … 인사 적체 판사들 불만 못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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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진영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진영 기자]

“우리의 전통적인 법관인사제도는 법조인력의 부족함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로 가치를 발휘하여 왔습니다만 결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대법원장 임기 24일 만료 #법관 이원화 연기, 상고법원 무산 … #사법부 내 인사 갈등으로 번져

2011년 9월 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사법행정의 난제에 대한 고심을 드러냈다. 핵심은 인사와 상고심의 적체였다. 판사 정원은 2011년 2844명까지 늘었지만 110명 정도(2016년 127명)인 고법부장(차관급) 자리는 제한돼 생긴 인사적체는 이미 고질병이었다. 고법부장 승진의 문이 좁아지면서 ‘배석판사→단독판사’ ‘단독판사→지법 부장판사’ 이동 기간도 길어졌다. 대법관 1인당 사건 처리가 연간 3000건에 육박하면서 상고심 재판은 마비 위기였다.

그러나 취임 초 양 대법원장의 운신의 폭은 좁았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퇴임을 앞둔 2010년 12월 법관을 1심 판사와 2심 판사로 분리하는 법관 인사 이원화 제도(이하 법관 이원화)를 2017년까지 완성한다고 못 박고 떠나면서 시행착오가 그의 몫이 됐다. ‘고법 부장’ 승진제를 없애 대법원장이 승진을 매개로 일선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막겠다는 게 법관 이원화의 취지였지만 부작용이 컸다. 지법부장급을 고법의 좌우 배석으로 앉힌 고법 대등부에선 판사들 간 의견 대립이 심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고법부장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면서 승진이 어려워진 판사들의 불만도 커졌다. 결국 양 대법원장은 법관 이원화를 무기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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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 발생한 ‘황제 노역’ 논란으로 촉발된 ‘향판 폐지’ 여론에 떠밀려 지역법관제를 폐지하면서 인사 문제는 더 꼬였다. 지역법관제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양 대법원장의 소신과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그 결과 3000명 판사 대부분이 한정된 수도권 근무 기회를 두고 다투게 됐다.

양 대법원장이 상고심 마비 위기와 인사 적체를 한 번에 해결할 ‘승부수’로 꺼낸 게 상고법원이었다. 고법부장급 4명이 재판부를 이루는 상고법원이 대부분의 상고 사건을 처리하고 대법원은 공익과 관련되거나 법령 해석의 통일이 필요한 1000~3000건만 골라 재판하는 정책법원으로 거듭난다는 구상이었다. 상고법원에 6~8개의 재판부가 설치되면 고법부장 자리를 24~32개 늘릴 수 있었다. 대법원은 19대 국회에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입법에 총력전을 펼쳤지만 무산됐다. 한 고법부장 판사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의 반대로 양 대법원장의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일선 판사들의 인사불만이 지난 3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맞물려 폭발하자 양 대법원장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양 대법원장 재임 중 2011년 3만7267건이던 상고 건수는 지난해 3만9021건으로 늘었고 인사 적체는 심화됐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3월 회생법원을 신설하고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키는 획기적인 성과도 남겼지만 난제들의 그늘에 가려졌다. 24일까지가 임기인 양 대법원장의 퇴임식은 22일 열린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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