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신고했더니..."신고자 색출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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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사진-독자 제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사진-독자 제공]

대구에 사는 허모씨는 중구의 한 건물로 출퇴근한다. 허씨는 이따금 건물 외부 주차장에 장애인을 위한 주차 공간 2개에 비장애인 차량이 주차된 것을 보곤 했다. 허씨가 사진을 찍어 틈틈이 민원을 넣기 시작한 것은 올봄부터. 지금까지 허씨의 누적 신고 건수만 해도 10건이 넘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건물 측에서 경고장을 붙였는데, 경고장 내용이 황당하다. 장애인 주차장에 비장애인 차량이 주차된 것을 사진으로 찍어 신고하는 사람이 누군지 색출해 내겠다는 내용의 경고장이 11일 붙은 것이다.

다만, 허씨는 '신고자를 색출하겠다'고 밝힌 쪽이 건물의 주인인지, 혹은 건물 관리사무소의 독자적인 결정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허씨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누군지는 알 수 없는데, (알림을) 읽어봐도 저도 자세한 내부 사정은 알 수 없다"며 "관리 아저씨가 잘못한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반 사례 신고 내역. [사진-독자 제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반 사례 신고 내역. [사진-독자 제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반 신고자를 색출하겠다는 건물의 알림 내용. [사진-독자 제공]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위반 신고자를 색출하겠다는 건물의 알림 내용. [사진-독자 제공]

건물 측은 안내문에서 "근간에 장애인 주차구역에 잠시 주차한 후(불과 3분도 있음) 과태료 처분을 받은 입주자들의 민원이 쇄도하여 내부자인지 외부자인지 확인코자 하오니 추후에 과태료 처분이 발생하면 즉각 연락주시면 CCTV로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진 찍어서 보냈다고 범법행위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상습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면 결코 아름다운 짓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현행법상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위반 주차는 불법이다. 신고를 당하면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신고는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익신고'가 많다. 스마트폰 앱 등 사진으로 하는 신고 특성상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이나 차량의 장애인전용 주차구역 안내표시가 명확하게 포함되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허씨는 올봄부터 시작한 장애인 주차구역 신고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몰래 신고는 계속 할 생각"이라며 "건물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는 것은 성격상 마찰이 생기면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성격이라 그 점은 좀 생각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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