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기술 가로채기, 공동특허 요구 통한 '무임승차'막는다…피해 기업 신고 없어도 직권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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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맹사업법 개정촉구 대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맹사업법 개정촉구 대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있다. [연합]

#. 대기업 A사는 협력업체 B사에 대해 공정 프로세스 및 설명서, 제품 설계도와 같은 관련 기술자료 일체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다른 협력업체들에게 넘겨줬다. B사의 기술을 다른 기업에 알려주면 동일한 부품을 다른 업체로부터도 공급받을 수 있어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누리기 위함이다.

당정, 대기업의 기술유용행위 근절 방안 논의 #기술 유용 피해 기업 신고 없이도 공정위 '직권 조사'.내년 자동차 기계 업종 집중 점검 #기술 유용에 따른 징벌적 손해 배상 '3배이내'에서 '3배'로 고정 #중소기업 기술자료 제3자에게 유출만 해도 처벌

#. 중소기업 C사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는데, 거래 관계가 있는 대기업 D사가 이에 대한 공동 특허출원을 요구했다. ‘을’의 지위에 있는 C사는 ‘무임승차 ’행위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정부가 대기업의 중소ㆍ벤처기업에 대한 기술유용 행위에 칼을 빼 들기로 했다. 중소기업의 기술을 3자에게 유출하거나 기술 개발 기여 없이 공동 특허 출원을 요구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이런 행위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유인을 크게 떨어뜨리며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당정 협의를 갖고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유용행위 근절 대책’을 논의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평생 노력해 얻은 자식 같은 기술을 빼앗기고 사업 실패로 이어져 극단적 생각까지 하는 중소기업인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면서 “기술 탈취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하는 현행법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로 중소기업은 을의 입장에서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소기업벤처부가 발표한 기술탈취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소기업 8219개 중 644개(7.8%)가 기술 탈취를 당한 거로 나타났다.

당정은 우선 공정위 내에 기술유용사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기술 유용행위에 대해 직권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 기업의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도 공정위가 먼저 서면조사 등을 통해 관련 협의 업체를 파악한 뒤 조사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갑을 관계에 있는 대ㆍ중소기업의 특성상 기술을 뺏겨도 신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했다. 실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유출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의 63.5%가 신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거래관계 유지를 위해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그간 신고에 근거한 사건 처리로 은밀하고도 교묘하게 기술 유용이 발생했는데, 조직 및 인원의 부족으로 기술 유용 대처에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매년 집중 감시업종을 선정해 서면 실태조사를 벌이고 직권조사 대상을 선별하기로 했다. 내년 기계ㆍ자동차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전기전자ㆍ화학, 2020년 소프트웨어 업종 등을 집중 감시한다. 또 동반성장 우수기업에 대해서도 기술 유용에 대해선 조사가 가능토록 할 방침이다. 현재 동반성장 최우수 기업에는 2년간, 우수 기업엔 1년간 직권조사가 면제된다.

처벌 수위는 높인다. 현재 기술유용을 하다 적발되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돼 ‘3배 이내’의 배상액을 무는데 이를 ‘3배’로 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법의 빈틈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하도급법을 개정해 기술자료 유출 금지 조항을 신설한다. 현재는 대기업이 제3자에게 기술자료를 유출해도 이를 유용했는지 여부가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앞으로는 유출 행위만 확인돼도 처벌 대상이다.

또 수급사업자에 대해 원가내역 같은 경영정보 요구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수급자업자의 자체 기술 개발에 기여하지 않았으면서도 공동 특허를 요구하는 행위 역시 불법임음 명시하기로 했다. 납품 후 장기간 동안 기술유용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조사시효를 기존 3년에서 7년으로 확대한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고 제제 수준을 높여 대기업의 편법적ㆍ우회적 기술 유용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유인이 높아지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황에도 기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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