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에 간극 확인한 한·러 정상…문 대통령 요청에도 푸틴은 냉정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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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과 러시아 정상의 눈높이는 여전히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단독 회담과 오찬을 겸한 확대 회담까지 2시간 42분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이후 두 번째였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와 압박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멈출 수 있는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인 만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도록 두 지도자가 강력한 역할을 해달라”며 “특히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톡 국제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양국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톡 국제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양국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문 대통령은 “이번에는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고도 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리도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하고 규탄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은 아무리 압박을 해도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1년에 4만톤 정도의 아주 적은, 미미한 석유를 수출하고 있고, 원유 (공급) 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엔 안보리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6자 회담에 북한이 참여하지 않으려 했던 걸 거론한 뒤 “북한이 최초의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아 중국이 원유공급을 중단한 바도 있었다. 그 후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했다”고 거듭 원유 공급 중단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별다른 호응이 없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이어진 공동 언론 발표에도 “한반도 사태는 제재와 압력 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에 몰면 안 되고, 철저히 냉정하게 긴장을 고조시키는 조치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뒤 “정치ㆍ외교적 해법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만든 ‘북핵 해법 로드맵’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 4일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중ㆍ러 외교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결단(핵과 미사일 도발 잠정 중단)→한ㆍ미 대규모 군사훈련 잠정 중단→동시 협상 개시→상호 원칙 확정(무력불사용, 불가침, 평화공존)→한반도 비핵화 실현(일괄타결)’의 단계적 로드맵을 담았다. 최종적으로는 북ㆍ미 , 북ㆍ일 간 관계 정상화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안한 로드맵을 북한이 진지하게 검토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도발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이어진 언론 발표 등에선 ‘제재’나 ‘압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런 표현은 윤영찬 수석의 전언 형식으로만 공개됐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앞두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두 정상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거나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도의 원론적 내용에만 의견일치를 봤다.

주러시아 대사 출신의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6차 핵실험 이후) 타이밍상으로는 아주 중요한 회담이긴 하지만 중요한 결과를 도출하기는 쉬운 여건이 아니었다”고 한계점을 지적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 한국이 협상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각자 생각을 말했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허진 기자, 서울=박유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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