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체납하고 해외로 거액 송금‥악덕 체납자 무더기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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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A씨(71)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40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공무원들이 찾아가 독촉을 해도 "돈이 없다"며 세금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A씨의 행색은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청 전경. [중앙포토]

경기도청 전경. [중앙포토]

A씨의 숨겨둔 재산은 경기도가 해외송금 거래내역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거래내역을 조사했더니 A씨가 기업은행을 통해 미국 웰파고 은행에 개설한 자신의 계좌로 43만 달러(한화 약 4억8600만원)를 송금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기도가 이 외화계좌를 압류하자 A씨는 즉시 밀린 세금을 냈다.

경기도, 체납자 3만6210명 해외송금 내역 전수조사 #법인 65곳과 개인 69명, 24개국에 1147억원 송금 #외화거래계좌 압류로 71명에게 18억7000만원 징수 #추가 조사로 사법당국에 수사의뢰, 가택수색도

해외 송금으로 자산을 외국으로 빼돌린 악덕 고액체납자들이 경기도 단속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기도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국내 10개 주요 은행을 통해 도내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 3만6210명의 해외송금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1만 달러(한화 1100만원) 이상 거래한 134명을 적발했다고 6일 밝혔다. 이들이 지난해 해외로 보낸 돈만 1억200만 달러(한화 1147억)에 달한다.

지난 6월 경기도 안양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지방세 고액 체납자 압류 물품 공개 매각 행사에 나온 11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 [중앙포토]

지난 6월 경기도 안양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지방세 고액 체납자 압류 물품 공개 매각 행사에 나온 11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 [중앙포토]

적발된 134명 중 법인은 65곳, 개인은 69곳이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만 법인 97억1600만원, 개인 49억100만원 등 146억1700만원에 이른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홍콩·일본 등 24개국으로 송금을 했다. 미국이 법인을 포함 38명(1085만 달러)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중국(30명·3315만 달러)·홍콩(19명·1448만 달러)·일본(11명·1048만 달러) 순이었다. 이 중 12명은 2개국 이상에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천시에 사는 B씨(73)는 16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텼지만, 기업 은행을 통해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개설된 자신의 계좌로 46만 달러(한화 5억2000만원)를 송금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1억41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한 기업법인은 베트남의 군대상업은행으로 1500만 달러(한화 175억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는 이들의 계좌를 모두 압류 조치했다. 그리고 39개 법인에게 13억1800만원, 개인 32명에게 5억5200만원 등 모두 71명으로부터 18억7000만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했다. 아직 세금을 내지 않은 63명(법인 27개, 개인 36명)은 출국금지 등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지난 6월 열린 지방세 고액 체납자 압류 물품 공개 매각 행사에 나온 명품 가방들. [중앙포토]

지난 6월 열린 지방세 고액 체납자 압류 물품 공개 매각 행사에 나온 명품 가방들. [중앙포토]

또 추가 조사를 통해 이들이 의도적으로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인지 등도 확인한 뒤 사법당국에 수사의뢰도 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재산국외도피죄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거액의 벌금은 물론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전영섭 경기도 세원관리과장은 "수차례의 납부 독촉에도 돈이 없어 납부하지 못한다는 체납자들이 이번 조사를 통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외화를 송금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적발된 체납자를 특별 관리대상으로 정해 가택수색과 동산압류를 병행하고 법인체납자의 경우 관허사업 제한을 검토 하는 등 강력한 징수활동을 추가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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