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패소 충격…재계 "허탈감 금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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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11개월을 끌어온 노조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이 노조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

경총 "노사합의를 준수한 사측에 일방적으로 부담 지어" #대한상의 "당사자간 합의 관행 부정..노사 신뢰 무너질 것"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권혁중)는 31일 기아차 노조 2만7424명(사망자 포함)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1조926억원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이제 지급하면서 중대위협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며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직원들에 4200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기아차는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결국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기아차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당초 청구금액과 비교하면 부담액이 줄기는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렵다"며 "특히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항소심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아차는 선고에 앞서 소송에서 패소하면 3년치 소급임금과 소송 제기 이후 판결 시점까지 합산된 임금, 연 15%의 법정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는데 최대 3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더라도 패소로 인해 지급해야 할 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해, 회계 기준상으로는 당장 3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7870억원이었다.

한편 경영계 전반에서도 우려와 반발이 쏟아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판결이 나온 직후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총 측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약속한 사항을 기준으로 임금의 범위를 규정했는데, 약속을 뒤집은 노조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노사합의를 준수한 사측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감수하라는 것”이라며 ‘신의성실의 원칙’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최근들어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노사신뢰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했던 관행을 스스로 부정해, 노사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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